여 행 등 산 편/경산곡곡스토리텔링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7(불굴사. 홍주암)(경산인터넷뉴스)

무철 양재완 2021. 4. 13. 17:17

김유신이 꿈을 키우던 ‘홍주암’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1. 할머니 약사여래불이 계신 불굴사


불굴사 가는 길, 봄꽃 대신 연두가 한창이다. 무학산 산자락에 봄의 화신으로 피어나던 연미색 자두꽃은 벌써 지고 없었다. 한 달이나 빨라진 봄 날씨에 자두꽃도 서둘러 피었다가 졌다. 갓바위 입간판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불굴사로 올라가는 가파른 산길이 나온다. 공장과 전원주택과 요양병원 등을 지나면 오른쪽에 바위투성이인 자두밭이 나온다. 언젠가 자두꽃이 피던 봄날에 불굴사를 찾아가는데, 아카시아향 비슷한 꽃향기에 정신이 아찔했다. 자두꽃과 복사꽃, 벚꽃이 울긋불긋 피는 골짜기는 꽃대궐이었고, 눈앞의 꽃밭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그래서 불굴사는 봄날에 가야 한다.

 천년고찰 불굴사

 

자동차가 숨 가쁘게 오르다 보면 큰 느티나무가 방문객을 반긴다. 불굴사와 홍주암이다. 불굴사는 갓바위부처님 명성에 가려 외지인은 잘 찾지 않는 사찰이다. 절 입구까지 차가 들어가고 입장료도 없다. 불굴사 역시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한창 때는 500여 동의 건물과 암자가 12, 물레방아 8 대를 갖춘 대사찰이었다. 그 영화로웠던 시절의 흔적이 석재로 남아 있다. 돌계단을 오르면 오래된 석재를 모아놓은 곳이 있다. 커다란 맷돌만 4개나 되고, 돌확도 여러 개다. 절집에 딸린 식구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품이다.

 보물 제429호 불굴사삼층석탑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적멸보궁 앞 삼층석탑과 석등이 제법 참하다. 경산지역에서는 귀한 삼층석탑이다. 내 발길은 약사여래입상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건물 안을 들여다보면 후덕한 인상의 약사여래불이 서 계신다. 조각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한다. 아마도 자연석 위에 부처님을 먼저 세우고 누각을 나중에 건립한 듯싶다. 머리모양이 족두리를 쓴 것 같아서 예로부터 할머니부처님으로 통한다. 경산지역에서는 불굴사 약사여래불과 관봉의 갓바위부처님을 부부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두 부처님 사이에 위치한 동네 이름도 음양리다. 음과 양의 조화를 중시한 성리학의 이념이 불교에 스며든 흔적이기도 하다.

 불굴사 할매부처

 

불굴사 인근에서 안나 갤러리를 운영하는 혜연 선생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불굴사 할매부처와 관봉 할배부처는 부부였는데, 할배부처가 시름시름 앓다가 큰 병이 났다. 할매부처는 산에 가서 약초도 캐와 다리고, 홍주암에 가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했다. 할매의 병구완과 기도 덕분에 할배부처는 병이 다 나았다. 몸이 다 나은 할배부처는 할매부처의 정성어린 뒷바라지를 잊어버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화가 난 할매부처는 영감을 팔공산 관봉 꼭대기로 추방해버렸다. 결미부분에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두 약사여래불을 엮어 서사를 엮는 옛사람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아울러 이야기를 통해 삶의 애환을 풀어내고자 했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혜연 선생의 친정어머니도 자주 불굴사를 찾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불굴사로 기도하러 갈 때는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하게 했다. 부정한 것도 보지 않고 부부관계도 금했다. 정갈하게 손질한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발걸음조차 조심스럽게 내딛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만약 이 규율을 어기고 불굴사로 올라가면 반드시 뱀이 출몰하여 길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인들은 관봉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을 테고, 갓을 쓴 갓바위부처님보다는 불굴사의 할매부처님이 더 친근하게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할매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놀리고 나서 바라보니 얼굴과 몸매가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마주치던 할매와 닮았다.

 

2. 천연 바위굴, 홍주암

 홍주암 입구 계단

 

요사채를 지나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했다는 홍주암으로 향한다. 홍주암 계단으로 오르기 전에 발길을 멈춘다. 와촌 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영천까지 시야가 막힘이 없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명당이란 이런 곳을 일컫는 것이리라. 뒤로는 산을 업고 앞은 막힘없는 곳.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봄 단풍이 든 산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어느 시인이 봄 풍경을 보고 꼭 첫사랑 같다고 했던가. 아련하고 눈물겹다. 연분홍 산벚꽃과 연두와 진초록이 어우러진 파스텔톤의 풍경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가을단풍이 그윽한 첼로 연주라면, 봄 단풍은 경쾌한 바이올린 연주이다. 봄의 왈츠가 귓전에 울려 퍼진다.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수직으로 깎아내린 바위군이 있다,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가파른 백팔 돌계단을 올라가면 기도처로 유명한 홍주암이 있다. 홍주암은 붉은 구슬이란 의미로 태양을 뜻한다. 음의 기운이 강한 불굴사 경내에서는 양의 기운인 아침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할 수 있는 장소이다. 철제 난간을 붙들고 계단을 올라가면 제법 평평한 공간이 나온다. 천연 바위굴이다. 바위 틈새로 약수도 흐르니 기도처로는 좋은 조건인 셈이다. 최근에 조성한 마애불도 있다. 독성각(獨醒閣)을 향하는 길은 두 갈래다. 비좁은 바위틈을 통과하는 길과 철제 계단으로 오르는 길. 두 길 모두 만만치 않다. 불가에서 말하는 진아(眞我)를 찾아가는 길이 저럴까 싶다. 독성각은 홀로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나반존자를 모신다. 더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독성각이 있다.

 홍주암 마애불

 

신라 왕실은 경산지역 압독국의 군주로 김유신을 임명하고 삼국통일의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는다. 망국 가야의 후손인 김유신은 입신양명의 꿈을 간직한 채 홍주암에서 심신을 수련했을 것이다. 자신의 조국을 점령한 신라, 점령국의 신하로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길을 홍주암에서 찾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슬픔을 다스리면서 심신을 연마했으리라. 강릉태수라는 변방의 관직을 하사받은 아버지의 한을 풀고, 어머니의 바람대로 신라왕실의 중심으로 진군할 열망을 품었으리라. 그래서인지 불굴사 아래 마을에는 고시원이 여럿 있다.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은 청춘들이 기거하는 고시원에는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수도하듯이 공부한다. 그들도 김유신처럼 부디 꿈을 이루길 기원한다.

 홍주암 소원지

 

바위를 법당 삼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용맹정진했을 수도승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이 차가운 바위굴에서 무엇을 꿈꾸었을까. 불편하고 차가운 바위에 처소를 정하고 기도에 들어가는 것은 몸을 속박하여 정신의 순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리라. 홍주암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황금빛 나뭇잎이 줄에 매달려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소원지이다. 영험한 기도처라 소문난 곳이니 중생들이 저마다 소원을 품고 홍주암을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소원지가 왜 하필 황금색일까. 연등을 달면서 가족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던 불가의 풍습이 바뀐 것일까. 황금에 눈이 먼 현대인의 초상화를 보는 듯 씁쓸해진다. 황금소에 눈이 먼 인간은 주변에도 많다. 황금이 쌓이는 만큼 정신은 황폐해지니 이 모순을 부처님은 해결할 수 있을까.

 홍주암에서 내려다본 골짜기 전경

 

김유신이 정진기도해서 삼국통일의 열망을 품었다는 홍주암에는 오래된 노송 한 그루가 바위에 겨우 뿌리를 박고 허공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고개를 돌려 소나무를 쳐다본다. 위태롭고 안쓰럽고 장하다. 저 소나무가 견뎠을 비와 바람과 땡볕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저 소나무처럼 삶이란 내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산길에 꽃샘바람이 휘몰아친다. 해마다 꽃들은 피어나고 꽃이 진 자리에 새순이 돋아난다. 언제부터인가 꽃보다 연두가 더 아름답다. 무학산 자락을 내려오면서 봄날은 간다~~’ 노래를 흥얼거린다.



<글 / 이운경(이경희)>
< 사진 / 무철 양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