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역의 ‘우울한 귀향’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작고 낡은, 그래서 더 애처로운 간이역
▲ 경산시 남천면 소재 간이역 <삼성역>
주변이 온통 벚꽃 대궐이다. 마을과 떨어진 강 건너 언덕 위의 고치만 한 집 한 채. 날갯짓에 익은 새끼들이 떠난 오그라진 둥지 같은, 대처의 자식들을 오매불망하는 어미 같은 삼성역.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한 강산이 흘렀다. 경산에서 청도로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 남천면 삼성리 안내판이 보이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멀리 벚꽃 사이로 ‘삼성역’ 작은 간판이 보인다.
경부선 철도역으로 1921년 9월 신호소 문을 열고, 1926년부터 여객 업무를 시작한 삼성역은 이용객이 줄어 더는 손님을 맞지 않고 하루 두 번 머물던 열차마저 무정차 통과하면서 역의 기능을 상실했다. 8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이용객이 있었다고 한다. 도로 확장으로 승용차와 버스를 상용하고, 비둘기호와 통일호 열차가 사라지며 삼성역을 찾는 발길이 점점 줄다가 이젠 아예 끊어졌다. 80년 긴 세월 동안 남천면 사람들을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와 연결하던 삼성역은 2004년 7월 15일 마지막 열차가 떠난 후 사람들의 이목에서 멀어져 지금은 신호장역으로 운영된다.
역 바로 앞에는 강이 흐른다. 경산 시내로 흘러내리는 남천강 상류로 지금 하천 정비사업이 한창이다. 오랜 세월을 버티어 온 좁고 낡은 콘크리트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 계단으로 올라가니, 마치 학생들이 없어 문을 닫은 시골 학교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100년 세월을 품은 여러 그루 벚나무가 이제 막 팝콘처럼 망울을 틔우고 있다. 역사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대합실 닫힌 문을 살며시 밀어보니 열린다.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의 작고 고즈넉한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것은 열차 시간표와 여객운임표가 적힌 안내판, 승객들이 기다리며 앉았던 오래된 나무 의자, 몇 개의 사물함과 벽에 걸린 빛바랜 액자뿐이다. 역사 내에는 박해수 시인의 ‘삼성역’ 시비가 건립돼 있다.
속을 다 비우니 아무것도 없네
허욕의 부스러기 향나무 껍질이네
네 몸의 피가 맑아졌네
땅거미 지는 저녁 황소 뿔 빛 노을
일일삼성오신
하루에 세 번 자신이 할 일을 되돌아보라네
무량한 아픔을 모두 벗겨 놓았네
이승의 짐을 지고 느릿느릿한 그믐달
먹물의 어둠을 밝히네
바람보다 더욱 빠른 마음이 내려와 눕는다
달덩어리 냇가를 넘어 남녘 하늘을 넘어가네
삼성역 큰 지암 큰 돌무덤 냇돌 들돌 덧널무덤
무덤 밖 이승이 저승을 넘어오네
삼성역 철로의 몸이 길어 달빛
화물열차는 숨을 고르네
삼성역 철로의 몸이 길어 달빛
삼성역에서 하루 세 번 마음 싸 안고 가네
뜨거운 몸 삼성역 세 번 마음을 껴안네
박해수 시인의 시 <삼성역> 전문
시인은 삼성역에서 논어 학이편의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吾身)을 생각해낸 것 같다. 하루 세 번 자신의 몸을 살피라는 성현의 말씀처럼 삼성역이 있는 이곳 삼성리(三省里) 사람들은 마을 이름처럼 모두 자신을 돌아보며 살 것 같다. 언젠가 가 본 화본역에도 이 시인의 시비가 있었다. 시인은 간이역을 무척 사랑한 것 같다. 지역 시인의 작품이 서 있으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띄어쓰지 않은 세로로 가지런한 판본체 글씨가 읽기에 편치 않다. 문득 이런 소박한 간이역에는 비뚤비뚤 어린아이가 쓴 천진난만한 글씨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척을 느끼고 사무실에서 나온 역장은 “여객 업무는 중지되었지만, 역무원이 상주하는 배치 간이역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산역 이전부터 남성현역까지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속도가 느린 화물열차가 후속 여객열차를 먼저 보내는 신호장 역할을 하고 있다. 무거운 화물열차의 대피가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곧 경산역에서 신호기를 조종하게 되고 역무원도 떠날 것이다”며 “역으로 오가던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를 지금은 통제하고 있다. 동편으로 돌아오는 새로운 길이 개설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역무원마저 떠나고 문이 닫힌 역사 안에 있는 시비는 보는 이 없이 저 혼자 외롭게 서 있겠다.
주변을 거닐다 보니 역사 밖에는 향토 출신 작가 이동하 장편소설 '우울한 귀향'의 무대라는 비석이 서 있다. 2020년 12월 경산문인협회에서 건립한 것이다. 두 그루 벚나무 사이에 서 있는 비석에는 작가가 서울에서 고향을 찾아 삼성역에 내릴 때의 모습을 묘사한 소설 첫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산 그늘에 묻힌 두 대의 신호기 중 하나가 빨간 불을 달고 있었다. 그것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윽고 멎었다. 차가 정거한 것이다. 조금 후에 그 빨간 불은 꺼져버리고 대신 파란불이 켜졌다.
차는 기적을 몇 번 울리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일 위를 구르는 묵중한 바퀴 소리와 함께 쇳내음이 섞인 냉랭한 바람이 플랫폼을 휩쓸었다. 곧 차의 꽁무니가 보이고 그것이 파란 신호등을 지나 점점 작아지면서 마침내 산그늘 속으로 묻혀 버렸다. 파란 불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불 꺼진 두 대의 신호기가 그림자 같은 그 모습을 쓸쓸히 드러내고 있었다.
삼성(三省), 홈의 그 하얀 현관 앞에서 나는 무심코 호주머니를 뒤지어 차표를 꺼내 보았다. 서울에서 삼성, 갑자기 전신에 피로감이 엄습해왔다.”
《우울한 귀향》의 첫머리
삼성역은 한 시대의 우울과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내면을 밀도 있게 파헤친 소설 ‘우울한 귀향’의 주요 서사 공간이다. 작가는 남천면 대명리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며 남천초등학교에 다녔다는 설명도 적혀있다.
경산시에서는 2018년부터 역 주변에 역사테마공원 조성을 계획하고 전망데크 설치와 문학비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잠시 서 있는 동안에도 고속열차가 무섭게 질주한다. 비둘기호가 머물던 정거장을 KTX 열차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쳐 버린다. 세상은 이렇듯 빠른 것만을 요구한다. 머물 수 없는 시간, 돌아오지 않는 지난날의 추억들, 느린 것은 세상 밖으로 내몰려 도태된다. 그래서 힘겹게 선 작은 역이 더 애련한 향수를 불러온다.
◆ 이동하 소설가와 ‘우울한 귀향’
이동하 소설가를 만난 것은 10년 전쯤 어느 가을, 경산 자인여중에서다. 내 모교이기도 한 이 학교에 문학강연차 왔는데 후배들이 앉은 맨 뒷줄에서 강연을 들었다. 작가는 ‘인생의 길, 작가의 길’이란 주제로 펼친 강연에서 문학소녀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나 또한 기억에 남는 강연이었다.
“단편 ‘팔각성냥’은 어린 시절 경산 읍내 장터 이야기로 50여 년 세월이 흐른 후에 쓴 것이다. 소설가의 삶과 문학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했다. 또 소설가가 되기로 한 중학교 2학년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았다고 했다.
“유소년 시절 맞닥뜨렸던 전쟁 체험과 고향을 떠난 이후 도시체험을 통해 형성된 세계관이 데뷔작 ‘전쟁과 다람쥐’와 첫 장편 ‘우울한 귀향’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인생의 길과 작가의 길은 일치하고, 양자의 괴리가 클수록 진정성을 잃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잊지 않았다. “결핍이나 불운을 탓하지 말고 바로 그 자리, 그 아픔에서 출발하라. 모든 길은 책 속에 있다. 자기 일과 삶에 몰두하고 사랑하라. 행복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소설가의 또 다른 장편 ‘장난감 도시’를 밤늦도록 읽었다. ‘우울한 귀향’이 삼성역과 고향인 남천면을 무대로 썼다면 ‘장난감 도시’는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살았던 대구가 배경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읽지 못한 ‘우울한 귀향’을 읽기 위해 지역도서관을 찾았지만, 책이 없었다. 절판된 지 오래되어 살 수도 없지만, 자료 검색을 해보니 전국의 도서관에도 몇 권 남아 있지 않았다. ‘책바다 서비스’를 통해 국립중앙도서관에 대출 요청했으나 돌아온 문자는 ‘대출 불가’였다. 경산문인협회를 통해 어렵게 손에 들어온 책은 누렇게 빛바랜 1986년 삼성출판사에서 발행한 ‘제3세대 한국문학’ 24권 가운데 10권째다. 삼성역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우울한 귀향’은 1967년 《현대문학》지 제1회 장편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소설을 읽은 후 다시 삼성역을 찾았다. 소설 속 화자인 내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우울한 귀향을 한때는 청년 시절, 대학 졸업을 앞둔 삭막한 겨울이었지만 지금 이곳은 벚꽃으로 주위가 온통 눈부시다. 열차는 떠나고 승객이 사라진 역에도 벚꽃과 개나리는 여전히 피고 진다.
▲ 남천초등학교
작가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간을 찾아 허적허적 걸어 다녔다. 수년 전 자원봉사자들이 참가하여 ‘사랑의 집짓기’로 조성된 ‘남천문화마을’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곳곳에 포도밭과 공장도 보인다.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면사무소는 행정복지센터로, 지서는 치안센터로 이름을 바꾸어 달고 있다. 면사무소 옆 우체국은 카페를 겸한 우편취급국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앞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는 순임과 철이, 윤을, 기차를 타고 입대하던 삼촌을 기억하고 있을까. 순임이네가 살았던 기와집과 철이네 물방앗간은 어디쯤일까. 철이 형을 멍석말이하던 배꼽마당과 피난민들, 전선으로 올라가던 미군들의 차가 지나가던 길은 이곳일까.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한 소년이, 그의 동화구연을 들은 어른들이 미래의 면장감이라고 찬사를 했던 그 소년이 자라 마을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우울한 귀향’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귀향 후 친구가 마련해 준 거처에서 한 편의 소설을 마무리하고 삼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한다. 오래전 고향을 떠난 작가가 그 후 몇 번의 귀향을 더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경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해마다 동인지에 실을 작품을 보내오니, 마음 한 자락은 고향에 두고 가신듯하다
“나는 이 진저리 나는 젊음이, 얻을 것도 간직할 것도 없는 이 허망한 젊음이 내게서 빨리 떠나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듯 뇌까렸다. 그러면 적어도 더 이상 헤맬 일은 없을 것이었다.”
《우울한 귀향》의 끝부분
누군가는 청년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라고 한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와 방황으로 힘든 시절이기도 하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젊음이 빨리 떠나주기를 바란다고 작품을 마무리한 작가도 이제 편안한 노년을 맞이하고 계시겠지. 나 역시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할 일을 다 하고 난 뒤에 느끼는 편안함, 숨 가쁘게 달리지 않아도 되는, 완행열차처럼 느리게 사는 이 시간이 좋다.
<글 / 천윤자 수필가>
<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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