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등 산 편/경산곡곡스토리텔링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4(마위지와 경산병영유적)(경산인터넷뉴스)

무철 양재완 2021. 3. 2. 14:21

마위지(馬爲池)와 경산병영유적(慶山兵營遺蹟)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압량읍 소재 마위지근린공원

 압량읍 부적리 마위지

 

영남대에서 진량 쪽으로 난 산업도로를 따라가면 좌측 도로변에 기마상과 저수지가 어우러진 마위지 근린공원이 나온다. 못가로 벚나무와 산수유, 개나리, 소나무가 늘어선 산책로가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체육시설과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양쪽에 기와지붕의 정자도 보인다.


 자연석 기단 위에 말을 타고 달리는 장군과 뒤따르는 병사 조형물이 높지 않게 설치되어 친근하다. 김유신 장군 조형물이다. 기마상 좌우와 뒷쪽으로 장군의 출생, 업적 등 일대기와 마위지 축조 스토리를 담은 부조 벽이 설치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와 함께 지역 유래를 읽으며 천천히 걷는다. 엄마 손을 잡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아이의 웃음소리가 햇빛 속에서 울려 퍼진다.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산수유 꽃이 노랗게 번지고 있다.

 

경산에는 압독국 또는 압량국이라 불리던 고대국가가 있었다. 압량이라는 지명유래도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이후 신라에 병합되고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 군주(軍主)로 부임하여 훈련장을 조성하고 군사를 키워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전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위지는 김유신 장군이 인근 군사 훈련장의 기마훈련을 위해 인위적으로 막았던 못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고, 목욕시키기 위하여 만들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규모가 더 컸으나 경산~하양 간 산업도로가 확장되면서 적잖은 면적이 편입되어 축소되었다.

 북향 건축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부적리

 

마위지가 있는 이 마을의 지명은 부적리(夫迪里). 남편 부()자와 나아갈적 ()자를 쓴다. 신라 시대 압량지역의 화랑훈련장에 차출되었던 병사들의 가족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집은 모두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백제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다시 고구려 전투에 참전한 남편과 자식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가족들은 고구려 땅이 있는 북쪽을 향해 상시 기도를 올리기 위해 북향집을 지었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에 100년이 넘는 흙담의 북향 초가가 20여 채 있었다고 한다.

 

아낙들은 저녁때가 되면 온종일 훈련에 지친 말을 못으로 몰고 나와 먼지 쌓인 귀를 씻어주었다. 전쟁에 출정 전 새벽에도 남편이 아끼는 말을 저수지에 몰고 나와 귀를 씻어주면서 전쟁터에서 적들의 동태를 기민하게 파악하여 남편이 살아 돌아오도록 기원하였던 곳이라 하여 마이지(馬耳池)로 불렀다고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말과 북향집은 보이지 않고 지금은 온통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로 둘러있다.

 

 김유신 장군과 경산 병영유적

▲ 사적 제218호 경산병영유적

 마위지 길 건너편 압량리와 내리에는 군사 훈련장으로 알려진 사적 제218호 경산병영유적이 자리한다. 길가에 위치해 금방 눈에 띄는 마위지와는 달리 병영유적 주변은 창고와 공장지대여서 압량 주민조차 유적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기 힘들다. 김유신이 병사들을 모아 무술과 정신을 연마시키던 연무장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압량읍 압량리와 내리, 진량읍 선화리 등 세 곳에서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다. 훈련장을 바쁘게 움직이며 훈련시켰을 장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위지에서 큰길 건너 작은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마을 길로 300m쯤 걸어가면 압량리 유적을 만난다. 마을의 서북쪽 구릉 지대에 높이 7m, 지름 85m, 둘레 300m쯤 되는 흙으로 쌓은 원형광장이다. 넓고 평평한 장소가 군사시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광장의 동남쪽에는 고분의 봉토처럼 흙을 쌓아 올려 장수가 군사들을 지휘했을 법한 10m 높이의 토루가 연결되어 있다. 토루 위와 뒤쪽에는 상수리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데 후대에 심었는지 장군의 행적을 기억하지 못한다.


토루 위에 서서 넓은 광장을 내려다보니 수백 명의 군사를 훈련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도 있고 어른들은 주변을 돌며 산책하기에 좋을 것 같다. 지역 사람들은 두룩산 유적이라고 부른다. 두룩산이라는 말은 두리산, 둥근 산의 지형에서 온 말인 듯하다.


내리 유적은 압량리 유적에서 하천이 흐르는 저지대 쪽으로 1.5 떨어져 있다. 압량리 유적처럼 광장이 있고, 광장의 동남쪽으로 토루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적인 지형에 인공을 조금 더하여 축조된 평탄한 모양으로 지름이 약 80m, 둘레 270m쯤 되는 원형광장이다. 토루는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고분의 봉토형으로 높이는 15m쯤 되는데 토루의 동남쪽이 파괴되어 있다.

 

 선화리 병영유적

 

진량읍 선화리 유적은 내리 유적에서 약 3 떨어진 구릉에 있다. 형태는 압량의 유적들과 거의 같은 모양이다. 다른 것은 현재 이곳에는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동산 같다. 본래는 훈련장이었으나 후에 나무를 심은 것 같다. 인근 어린이집에서는 이곳에 자주 소풍을 나온다고 한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김유신 대장군이 압량주 군주로 부임 당시 압량 주민들이 스스로 주를 지키기 위해 김유신 휘하에서 대야성 전투에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압량주와 인접한 대야성이 백제군에 함락되자 대야성 탈환을 위해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부임했다. 압량 주민들은 지역을 지켜내기 위해 김유신 장군과 합세하여 대야성을 탈환했다. 연이어 백제 정벌에 성공한 신라군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했다고 한다.

 경산 병영유적(압량 훈련장 전경)

 

여기에 참여한 다수의 군사가 압량주의 병사들로 당시 이 일대에 축조된 병영유적이 이들의 훈련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원로들은 당시 수차례 전투를 벌이면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의 우국충정을 추모하는 숭모제를 지금도 봉행하고 있다.

병영유적 토루 위에 올라서면 경산 도심은 물론 대구 수성구와 동구, 영천시 금호읍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로 향하던 주요 길목에 버티고 선 경산병영유적은 구전하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언한다.

 

 다시 이야기 속으로


세 곳의 병영유적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한 마위지에는 어둠이 내린다. 저수지 둘레에 설치된 LED조명이 수면에 비치어 낮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물 위에 뜬 정자에 앉아 맞은편 정자를 바라보니 물속 풍경이 별세상이다. 불빛 속에서 한 사람이 색소폰을 불고 있다. 상상 속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색소폰 소리는 불기만 하면 적군이 물러나고 나라의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는 전설 속 만파식적을 불러오고, 그런 피리가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었던 어린 시절로 이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처음 읽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쯤이다. 어린이 수준으로 쉽게 쓴 책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고전 읽기를 강조하며, 학년마다 도서를 정해 읽게 했다. 독후감을 쓰고, 내용을 소재로 그림 그리기를 하고, 독서퀴즈 같은 시험도 쳤다. 학교 도서실에서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기억해보면 강요된 책 읽기는 재미없었지만, 그때 읽은 책들은 이후 살아오면서 독서 습관을 갖게 해 주었다.


책 표지가 푸른색이었던가, 노란색이었던가 기억도 흐릿하지만 내 기억 속에 선명한 것은 삼국유사의 지은이가 승일연이다. 강요된 암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당시의 나는 일연 앞에 쓰인 승()자가 김이나 이, 박과 같은 성씨인 줄 알았다. 그런 독서 수준이었으니 내용인들 얼마나 이해했겠는가마는 그때 읽었던 김유신과 천관녀 이야기, 김유신의 누이와 김춘추, 선덕여왕의 지혜, 바다의 용이 된 문무대왕, 서동과 선화공주라든가 이상한 피리 만파식적, 이차돈의 순교 같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기억의 창고에 잠재되었다가 국사 시간이나 국어 시간에 불쑥 뛰어나오기도 했다.


그때는 아주 먼 역사 속 인물인 줄만 알았지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인 줄은 몰랐다. 신라의 유적을 찾으려면 경주에 가야만 되는 줄 알았다. 내가 경산 이야기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 고장 이야기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 중이다. 1년이 넘는 전쟁 기간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고 회복했으며 전장에서 영웅들이 여러 모습으로 활약하고 있다. 갑옷을 입고 총 칼을 든 장수가 아닌 방호복으로 무장한 의료인들이 돋보인다. 백신 접종을 앞두고 운반 차량이 줄을 잇고, 예행연습도 한다. 전시의 훈련 같다. 지난해 이맘때 이 고장에서는 더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이면서 지역을 둘러보는 계기가 됐다. 무심코 지난 곳에서 역사를 만난다. 먼 훗날 오늘 우리가 겪은 일들도 후손들에게 이야기로 전해질 것이다. 망울을 맺고 있는 벚꽃과 온갖 봄꽃들이 만개할 즈음에는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다시 이곳에 와서 걷고 싶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