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산성과 무지개샘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허물어진 옛 성터를 찾아
경산에서 용산산성을 향해 가다 보면 자인면을 지나면서부터 오른쪽에 유난히 눈에 띄는 산이 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능선을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비해 이 산은 저 홀로 우뚝하다. 용산이다.
용성면 소재지를 거쳐 운문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길 오른쪽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곡신리 마을이 나온다. 지역농산물인 포도며 복숭아 벽화가 그려진 정겨운 담장 사이를 걸어서 마을회관을 지나면 용산에 오르는 고즈넉한 숲길로 이어진다. 마을 어귀에서 완만한 숲길을 갈지자로 여러 번 꺾어 돌며 2.5km쯤 올라가면 용산산성 북문에 이른다.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와 소나무, 잡목 등이 섞여 있는 숲길, 여름에는 울창한 숲을 이루어 걷기에 좋을 것 같다. 잎을 다 떨구어낸 나목은 욕심을 내려놓은 수행자같이 의연하다. 지난가을 떨어진 나뭇잎이 바람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굴러다닌다. 길가엔 심은 지 오래되지 않은 측백나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 서 있다.
용성면과 남산면, 청도군 금천면의 접경에 있는 용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둘레 약 1.6km, 높이 2.3m, 너비 3.2~3.6m의 규모로 돌을 쌓아 만든 용산산성은 2000년에 경상북도기념물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성곽은 형태를 잃었지만, 성내를 둘러볼 수 있는 오솔길은 남아있다. 가파르지 않아서 찬찬히 사색하며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해발 435.2m 용산 정상에 올라서니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기념사업으로 세웠다는 표지석이 있다. 용성면, 자인면, 진량읍, 하양읍, 경산시가지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성 축조 당시 외부 침입자의 동태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새였을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표지석 주변 제법 넓은 터에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내려앉는다. 수려한 소나무 곁에 자리를 깔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자니 그 옛날 성안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펼쳐진다.
안내도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문 터가 남아있고, 내부에는 군사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우물 터 두 곳이 있다. 그러나 오솔길을 따라가면 돌무더기로 보아 성문터였을 것으로 짐작이 될 뿐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경산시 지에는 용산산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동쪽과 남쪽은 돌을 쌓았으나 북쪽과 서쪽의 급경사지에는 석심토축을 한 테뫼식 산성이다. 동쪽은 성벽 아래 다시 돌을 쌓아 이중 성벽으로 축조되어 당시 주요성문으로 옹성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있지만 현존하는 상태로 살펴볼 때 동벽과 북벽은 큰 돌을 아래에 깔고 수직으로 축성한 것 같다. 성 돌은 용산에 산재한 풍부한 돌로 부정형이지만 쌓기에 편리하도록 깨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지에서는 신라 시대 말기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기와 조각과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사기에 김인문이 당나라로부터 돌아와서 군주로 임명되었고, 장산성의 축조를 감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산성’이 지금의 용산산성이라는 설이 있다. 경산시는 학술조사를 거쳐 북문 주변 성벽 일부를 복원하고, 주변에 정자와 체육시설도 마련했다.
◆ 울타리에 갇힌 무지개샘
산 중턱에 위치한 무지개샘에는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오른다. 용성 사람들이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산성의 북문으로 가기 전 외성 주변에 있는 무지개샘은 초행길엔 눈에 잘 띄지 않아 자칫 놓치기 쉽다. 마지막 굽이를 돌아 몇 걸음 가면 무지개샘이라 적힌 반원형 석판이 있고 거기서 몇 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돌로 울타리를 쌓은 우물 모양의 무지개샘이 있다.
지역의 한 향토사학자는 “샘은 울타리가 없는 식수 시설이며, 울타리가 있는 식수 시설은 우물이다. 산성은 비상시에 사용된 국방시설이기에 바가지로 물을 쉽게 퍼서 먹을 수 있는 샘이 더 적합하다. 무지개샘의 돌 울타리는 후세의 잘못된 복원이며, 지금이라도 울타리를 허물고 샘으로 제 모습을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지금 무지개샘 둘레에는 철망이 쳐져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출입금지와 무속 행위 금지 경고문이 적혀있다. 무속인들이 주위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면서 산불이 발생한 적이 있어 산불 방지책으로 이런 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성을 복원하여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무지개샘의 접근을 막아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전설이 된 산성과 샘
이 마을에는 용산의 생성을 둘러싼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먼 옛날 한 아낙이 이른 아침에 마을 앞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에 짙은 안개가 뒤덮이더니 거대한 형체가 조용조용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봤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산이 걸어오고 있었다. 크기에 압도당한 아낙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잠시 뒤 깨어난 아낙은 다시 한번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개 속에서 걸어오고 있던 산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성의 축조에 얽힌 전설도 있다. 용산이 생기면서부터 산 중턱에 있는 무지개샘에는 비를 다스리는 큰 용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작은 장수들이 몰려와 산성을 쌓기 위해 돌을 날랐는데, 산을 지키던 샘의 용이 이 소식을 듣고 몹시 화가 나 짙은 안개를 피웠다. 장수들은 큰 바위를 안고 날아오다가 미처 산에 닿기도 전에 들판 가운데 바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결국, 장수들은 무지개샘의 용을 찾아가 “이 고장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으려는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다. 용이 이를 허락하자 안심한 장수들은 먼 곳에서 돌을 날아오는 대신 샘 주위의 돌을 마구 날라 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용은 그로부터 석 달간이나 가뭄이 들게 했다. 장수들은 다시 용을 찾아가 사흘간 엎드려 빌었고, 그제야 화가 풀린 용이 큰비를 내렸다고 전한다. 그러자 샘에서 무지개가 높이 떴고, 이때부터 이 샘을 ‘무지개샘’으로 불렀다고 한다.
용산과 무지개 샘에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용산은 명당이라 부근에 묘를 쓰면 당대에 큰 인물이 나거나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무지개샘 위쪽에 묘를 쓰면 마을에는 가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무지개샘을 찾아가 기우제를 지내고 미리 준비해 간 괭이나 삽으로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근처에 누가 무덤을 써서 백골이 묻혀있지 않은 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백골이 발견되면 후손을 찾아 산 아랫마을에 묶어놓고 매질하면서 비를 기원하는 주문을 했고, 후손을 찾지 못하면 백골을 멀리 던지며 비 내리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은 전설일 뿐인 모양이다. 정상 가까이 올라가니 표석이 세워진 묘지가 보인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삶은 곧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 간, 부족 간, 단체나 개인 간에도 끊임없이 뺏고 뺏기는 전쟁의 역사가 이어오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정치도 문명화된 전쟁이라고. 그 옛날 내 것을 지키려 하던 이들이나 뺏으려 하던 이들은 지금 어느 산골의 백골로 남았을까, 흙으로 돌아갔을까. 누구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영원한 것도 없다. 허물어진 옛 성터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니 세상사가 한 점 먼지처럼 느껴진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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