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 한 모금으로 마음을 씻고 - 원효암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1-01-18 오전 9:58:51
1. 산속에 숨은 고즈넉한 암자
원효암은 경산의 숨은 명소이다. 와촌을 지나 갓바위 가는 길로 들어서서 한참 올라가면 오른쪽에 원효암이라 새긴 큰 바위가 서 있다.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고즈넉한 암자인데, 은해사 말사이다. 도로에 차를 세우고 일행과 함께 산길을 오른다. 차로도 올라갈 수 있지만 걷기로 한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오른쪽 산자락은 자두밭인데, 큰 바위가 밭 곳곳에 있다. 그 돌밭을 자두밭으로 일군 농부의 마음과 손길을 상상해 본다. 숨이 턱에 찰 즈음이면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늠름한 건목으로 자란 소나무를 만날 때마다 그 나무가 견뎠을 햇빛과 비와 눈보라와 시간을 떠올린다. 산 중턱쯤에서 산모퉁이를 돌면 새뜻한 암자가 나타난다.
원효암은 통일신라 초기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1882년 고종 때 긍월대사가 주도해 중창을 했으며, 1986년 팔공산산불로 전각 등 건물이 불에 탔다. 그러다가 1990년에 다시 중창불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왼쪽 약수터로 발걸음이 향한다. 물맛이 간간하고도 달큼하다. 옛 우물도 남아있다. 오랜만에 보는 나무 두레박이 반갑다. 오래전부터 인근에서는 원효암 약수가 좋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그래서 원효암을 냉천사(冷泉寺)라 부르기도 한다. 시원한 약수 한 모금으로 갈증을 해소한다.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누각의 덧문이다. 연꽃 문양이 아름다운 석등 기단석 위에 얼기설기 얹어놓은 석탑이 소박한 옛 암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웅전과 마주보는 단층 누각인 사자루는 창문이 특이하다. 샛시문에 덧창문을 달아 전통양식을 살렸다. 그 덧문에 동자승과 스님이 구름 위를 노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천진스러움과 순수함이 담긴 불화를 보노라니 내 마음도 순화되는 느낌이다. 화재로 새로 지은 건물이라 산뜻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건물의 배치나 모습이 전통 사찰의 양식을 따르고, 자본의 냄새가 덜 난다는 점이다. 작지만 정결한 원효암에서 약수 한 모금에 마음을 씻고 간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요사채에 보살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린다. 댓돌에 꽃그림이 화사한 회색털신이 몇 켤레 보인다. 가는 날이 음력 초하루였다. 절 마당을 서성거리는데 젊은 비구니 스님이 나와 말을 건넨다. 회색 털모자를 쓴 얼굴이 해사하게 맑다. 날씨가 추우니 들어와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란다. 스님을 따라 요사채로 들어가니 인절미와 귤을 내오신다. 올 초에 원효암 종무소에 부임한 대륜(大輪)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스님께 몇 가지 질문을 던지니 친절하게 답해주신다. 인근 신령의 사찰에서 오래 절집 일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출가해서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단다. 절집도 세파의 흐름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스님은 송사에 휘말려 수년 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원효암과 인연이 닿아 이곳에 오시게 되었단다.
대륜 스님은 “스님으로서 기본인 공부를 열심히 하고, 차 문화를 통해 사부대중들과 소통하고 싶다.”라며 새해 희망을 밝혔다. 따스한 차 한 잔이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기 때문이란다. 스님의 말씀과 얼굴에서 대학 신입생 같은 설렘과 희망이 넘쳐났다. 절집 답사를 자주 다녔지만, 불자가 아닌 나는 스님과 대화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대륜 스님은 스스럼없이 낯선 방문객에게 말을 걸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스님 앞에 누구든 마음의 빗장을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륜 스님은 내 전화기에 최초로 번호를 저장한 스님이다. 봄날이 오면 다실에서 차를 대접하겠다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암자 뒤 대나무숲길로 들어섰다.
2. 마애불 부처님을 만나다
▲ 원효암 마애여래좌상
극락전 뒷길로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마애여래좌상을 만난다. 완만한 경사의 산길 왼편에는 암자에서 가꾸는 텃밭이 있다. 겨울냉이가 땅에 바짝 몸을 밀착한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일행들과 겨울냉이의 향과 맛을 이야기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텃밭 오른쪽에 뚜껑을 덮은 옹달샘이 또 있다. 이 샘도 사시사철 온도가 변함없고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쯤에서 호흡을 고르며 물 한 모금 마셨으리라. 아니면, 가난한 어머니가 정결한 약수 한 사발 고이 떠서 부처님께 공양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무 계단을 오르다보면 잘 생긴 바위가 떡 하니 나타난다. 바위 앞에 서 있는 단풍나무에는 바싹 마른 단풍잎들이 찬바람에 떨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잎들이 애처롭다. 오른쪽으로 돌면 바위 속에 부처님이 앉아 나그네를 반긴다. 누가 그랬던가. 마애불은 본래 바위 속에 계시던 부처님이 현시(顯示)한 것이라고. 마애불은 바위에 선이나 면을 파서 새긴 부처를 일컫는다. 경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마애불이다. 반가운 마음에 두 손을 합장한다.
원효암 마애여래좌상은 바위 면을 쪼아 길쭉한 반원형의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경주 남산의 감실부처님과 유사한 양식이다. 정으로 바위를 파서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하는 방식이다. 부처님은 우아한 꽃잎형의 전신 광배를 배경으로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다. 마치 연꽃 봉우리 안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듯하다. 연꽃대좌 아래로 바닥까지 이어지는 연꽃 줄기가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래상은 조각 솜씨가 좋고,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감을 준다. 이 여래상은 손 모양이 특이한데 양손 모두 손등을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에 두고 왼손은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얼굴의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이 심하다. 눈 코 입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시멘트로 훼손 부위를 대충 발라 놓았다. 차라리 그냥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고증 없는 어설픈 복원이 부처님 인물을 다 버려놓았다.
본래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이름 없는 백성의 부처님이다. 시집간 딸이 아이가 없거나, 부모가 아프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부처님께 매달리고 빌었다. 지금이야 절 입구까지 차를 타고 들어오지만, 절에 와서 기도를 하려면 수십 리 산길을 걸어와야 했을 것이다. 그 정성만으로도 부처님은 감복하여 소원을 들어주었을 것만 같다. 아들 낳게 해준다는 속설을 믿고 몰래 부처님의 코 부위를 떼어가 삶은 물도 마셨을 터이다.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원효암 마애불은 얼굴 없는 부처님이 되고 말았다.
3. 원효암에는 원효가 없다
원효암에 가면 원효를 만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원효암에는 원효가 없다. 큰스님의 계송같은 이 한 마디가 원효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원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원효를 아는 이도 없다’. 이 말은 원효가 주창한 무애(无涯)사상의 폭과 깊이가 광활하여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말일 터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압량군의 불등을촌 밤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승려이면서 거사(居士)였고, 사상가이면서 만인의 스승이기도 했다. 원효는 어떤 형식에도 구애되지 않은,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었다.
하여, 원효 스님을 원효암에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중생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번뇌로 고민하는 인간의 마음에, 방방곡곡 어느 곳이든 계시지 않을까. 원효암 안내판에 그려진 원효 대사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슬픈 듯 자애롭다. “그래, 세상살이가 힘들지? 네가 무얼 근심하는지, 너의 갈등과 번뇌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있단다. 괜찮다, 괜찮다.“라며 등을 토닥여줄 것만 같다.
초등학교 때 읽은 해골바가지 설화를 되새김질 해본다. 그때는 ‘해골’이라는 단어가 내뿜는 이미지 탓에 두렵고 무서웠다. 번뇌로부터의 해탈과 진리의 깨달음도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원효암’이라는 절 이름에도 얽매이지 말아야 하리라. 산이 주는 맑은 공기와 청정한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게다가 원효암에는 물맛 좋은 약수가 사시사철 흐른다. 운이 좋아 대륜 스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다실에 들어가 차 한 잔 나누어도 좋으리라.
이번 겨울은 유난히 힘들다. 맹추위와 코로나로 마음조차 얼어붙었다. 머잖아 곧 봄이 올 것이다. 자두꽃이 피고 새순이 돋으면 원효암으로 가리라. 원효암 입구 자두밭에도 그때쯤이면 연미색 꽃이 만발할 것이고, 대륜 스님도 다실의 문을 활짝 열고 누군가를 기다릴 것이다.
<글 / 이운경(이경희)>
<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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