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등 산 편/경산곡곡스토리텔링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8 (경산상엿집) (경산 인터넷뉴스)

무철 양재완 2020. 11. 27. 19:59

국가 민속문화재 경산상엿집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0-11-27 오후 5:13:06

 

 국가지정 중요 민속문화재 제266호 경산상엿집

 

 상엿집과 상여

 

어릴 적 살았던 고향 마을에도 상엿집이 있었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외딴곳에 폐가나 헛간 같은 허름한 집이었다. 이웃 마을 친구 집에 놀러 가려면 거쳐야 하는데 지나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걸음도 빨라졌다. 아이들은 그곳에 귀신이 산다고 했다. 어른들도 인적이 드문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다. 어느 순간 그 집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허물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철이 들면서 그곳이 상여를 보관하던 상엿집이란 걸 알았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초성 좋은 마을 어른이 앞소리로 상여를 인도했다. 앞소리는 상주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동네 사람까지 눈물을 머금게 했고, 어린 우리조차 숙연해졌다. 이제 그분의 앞소리도 고향 마을 상엿집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피해서 다니던 상엿집을 이제 수시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매달 인문학 강좌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곳은 귀신이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 친숙하게 느껴진다.

 

경산시 하양읍에서 환성사 가는 길로 가다가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스코틀랜드 출신 양 수산나 여사가 1960년대에 지역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설립한 무학농장을 만난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해발 350m 무학산 중턱 제법 넓은 공간에 나라얼연구소 건물과 함께 하양읍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상엿집이 있다. 국가지정 중요 민속문화재 제266호 경산상엿집이다.

 

 좌로부터 경산상엿집, 황보인 마을 상엿집, 여재실

 

구조와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누각형으로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다. 벽 전체를 목부재를 이용한 판벽으로 마감하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마루에는 한쪽에 16명씩 상두꾼 32명이 드는 대형 상여와 영혼을 싣는 영여(요여), 상여를 들어 올리는 760의 방틀, 방상시 탈과 청룡 황룡 용마루가 보관되어 있다. 오른쪽 칸은 들것, , 망께 같은 산역 도구와 장례에 필요한 부속품을 보관하는 창고다.

 

본래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마을 가운데 있었지만 2009 3월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자천리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지은 지 300년쯤 된 것으로 추정된다. 1891년 중수 시의 상량문이 있고 3번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상여계의 실제 운영 모습, 마을공동체의 풍속, 촌락의 사회경제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문서와 상례 물품도 발견됐다. 원형보존과 민속학적 가치가 있어 문화재청은 2010년 경산상엿집과 관련 문서를 국가지정 중요 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

 

 여재실


이 상엿집 옆에는 3칸 맞배지붕 건물이 하나 더 있다. 바닥을 띄운 옆의 상엿집과는 다르게 바닥을 기와와 토석으로 막아두었다. 벽면에는 나무판의 거친 부분이 밖으로 나오도록 판벽을 둘러놓았다. 그 옆으로 돌을 쌓아 올린 기단 위에 맞배지붕 구조의 사당으로 보이는 한 칸 건물이 있다. 여재실(如在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 앞에는 2개의 작은 석등과 입석송덕(立石頌德)’이 음각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상여 관리와 상엿집을 지키며 삭망에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빌며 제사를 올리던 고지기집도 있다.

 

 아름다운 전통상여, 나라얼연구소는 20여틀의 상여를 보전하고 있다.

 

연구소 안에도 지역마다 나름의 삶을 해석하여 반영한 특색있는 상여와 요여가 수십 점 보존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만주에 이주해서 살던 동포들이 민족의 한을 담아 사용하던 상여, 하얀 꽃으로 덮은 상여에 붉은 꽃 십자가 문양을 넣은 기독교식 꽃상여, 이미 작고한 국가무형문화재 상여장이 만든 상여 등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민간의 철학을 담고 있는 상여들이다.

 

 방상시 탈(왼쪽 양반용 목탈, 오른쪽 짚으로 만든 양민용 탈)

 

가만히 보고 있으니 상여가 아니라 정교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나무로 깎은 다양한 인물 모양의 꼭두를 비롯하여 청룡, 황룡과 봉황, 여러 동물과 새의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햇빛을 가리려고 상여 위를 덮는 앙장과 상여를 조심해서 운구하려고 귀퉁이에 달아놓은 풍경을 보니 망자를 받드는 산사람들의 경건한 태도가 엿보인다.

 

 시묘막


나라얼연구소에서 최근 이곳에 시묘살이집도 지었다. 효심이 깊은 상주가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여 산소 앞에 작은 여막을 짓고 3년 상을 마칠 때까지 지내던 시묘막을 재현해 놓았다.

 

 죽음과 삶을 잇는 상례

 

가자가자 어서 가자 북망산천 찾아가자/ 오호옹 오호옹 오호에야 오호옹/ 이래 갈줄 내몰랐다 언제 다시 만나볼꼬/ 오호옹 오호옹 오호에야/ 북망산천 머다더니 내집 앞이 북망일세/ 오호옹 오호옹 오호에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을 일러 주오.”

 

삶의 애환을 담은 이별의 노래로 앞소리를 메기자 상여를 메고 가는 상두꾼들이 뒷소리로 화답한다.

 

 출상

 

출상하면서 시작한 상엿소리는 하직하는 소리, 대문 나가는 소리, 거릿제 소리,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며 부르는 소리, 좁은 길 가는 소리, 다리 건너는 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여의 운구는 힘든 노동으로 일종의 노동요로도 볼 수 있다.

 

경산상엿집에서 대구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주민들의 상엿소리 시연이 펼쳐졌다. 나라얼연구소에서 선인들이 남긴 죽음의 문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해마다 여는 행사다.

 

 발인제

 

실제 초상이 난 것처럼 발인제를 지내고, 상주들이 대나무 막대를 짚고 곡을 한다. 부친상인 모양이다. 출상이 시작되자 망자의 가는 길을 밝히기 위해 등롱이 앞장선다. 이어 빨간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창을 든 방상시가 뒤따르며 잡귀를 쫓는다. 관작과 이름이 적힌 빨간 명정 깃발과 망자를 추모하는 글이 적힌 만사를 든 사람과 영혼을 실은 요여가 따르고, 화려하게 장식된 상여 뒤를 이어 마을 사람들도 따라간다. 행상길 도중에 상여를 내려놓고 노제를 지낸다. 상주를 비롯하여 친척과 친구들이 잔을 올리고 음식을 나눈 후에 다시 행상을 계속한다. 산으로 오를 때에는 상엿소리도 조금 빨라진다. 어릴 적 마을에서 가끔 보던 모습이다. 이날의 행사는 산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저승으로 가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상여행렬

 

산에 도착하여 하관 후 흙을 덮고 평토제를 지내고 봉분을 만들고 잔디를 입히면 장례는 마무리된다.

 

우리 조상들의 상례는 망자를 편하게 보내고 상주들을 위로하는 마을공동체 문화였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왔다. 상여는 망자가 타고 가는 운반수단이었기에 가마보다 화려하게 장식했다. 마을마다 상여를 보관하는 상엿집이 있었고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두려운 곳으로 인식하여 마을 안보다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다. 장례문화가 바뀌어 영구차를 이용하면서 상여도 사라졌다.

 

 한량무


경산상엿집은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를 보존한 곳이다.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상례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몇 해째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살아있는 이들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상여를 타고 가지는 못하더라도 육신은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삶에 대해 경건해지며 가장 겸손해지는 날이다.


 지역 인문학 산실, 나라얼연구소

 

조원경 ()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이 사라질 위기의 상엿집을 사비를 들여 극적으로 무학산으로 이전한 이야기는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다.

 

영천시의 골동품점에서 고문서를 찾던 조 이사장은 자천리에 아주 좋은 상엿집이 있는데 공공박물관이나 대학 박물관에 팔려고 했으나 사려는 곳이 없어 3일 후에 굴삭기로 헐어버리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을 찾아가서 웅장하고 멋진 상엿집을 본 그는 그 길로 대출을 받아 값을 치르고 상엿집을 옮겨오기로 했다. 기와, 서까래를 걷어낸 뒤 대형 크레인과 트레일러를 동원해 본체를 그대로 옮겼다. 승용차도 다니기 힘든 교통이 불편한 무학산 중턱까지 옮기려니 이전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매월 개최하는 인문학 강좌 장면

 

상엿집 이전 이후부터 상엿집과 관련 문서를 보존하고 선조가 남긴 죽음의 문화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 했던 지혜의 모습을 찾아 알리려 ()나라얼연구소를 설립하고 2014년부터는 해마다 전통 상례 문화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또 매달 둘째 토요일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인문학 강좌를 열면서 지역 인물 발굴과 재조명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경산상엿집에서 내려다보는 하양읍 전경

 

죽음이 없다면 맹목적인 삶이 된다. 잘 살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죽음의 세계, 죽음을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유형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자산이 상엿집이다

 

한국의 전통 상례 문화는 우리 정신문화와 생명 문화의 백미이고 상엿집은 그 정신과 실체를 고스란히 보전한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생명 경시가 만연한 이 시대에 이웃의 소중함, 생명의 존귀함을 알게 하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보여주며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한다

 

경산 상엿집이 보전되고 생명 문화의 산실로 꽃피울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조원경 이사장과 황영례 소장, 두 사람의 말이 오래도록 귓전을 울린다.


글 천윤자 수필가

사진 무철 양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