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의 명물이 된 ‘하양 무학로교회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0-10-30 오후 2:45:40
▲ 하양 무학로 교회
◆ 본질에 충실한 작고 아름다운 예배당
경산에서 하양으로 오고 간 지가 10년을 훌쩍 넘었다. 자동차를 타면 30분 만에 충분히 갈 수 있지만, 목적이 없으면 잘 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목적이 없어도 간다. 경산시청에서 압량읍을 거쳐 환상리 묘목단지를 지나 대부 잠수교에 이르면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과 봄에는 유채꽃, 청보리가, 가을이면 코스모스, 홍초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해질녘 강가에 서면 노을은 더욱 장관이다. 나는 할 일 없이 이곳을 자주 서성인다. 하양 무학로교회 야외 예배당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고요히 흘러나오는 성가에 귀를 기울이며 묵상에 들기도 한다. 어쩌다 목사님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초막 같은 집무실에서 차 한 잔과 초콜릿을 먹으며 말씀을 듣는 행운도 누린다.
여느 시골 동네 같은 하양에 대학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었고, 학생들이 많이 오가고 있다. 이러한 하양에 요즘 새로 지은 교회를 보기 위해 심심찮게 사람들이 오고 있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려는 청년들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도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와 하양읍사무소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하양읍을 가로지르는 조산천이 나타난다. 조산천 건너 좌측으로 대규모 신축아파트가 건축 중이고 우측 전통마을 가운데 벽돌로만 지은 네모난 건물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 무학로교회 신축 예배당
신도 30여 명의 작은 시골교회, ‘하양 무학로교회’ 신축 예배당이다. 2019년 완공된 이 예배당은 날로 커지고 세속화돼 가는 우리 교회 현실에서 연면적 15평의 아주 작은 예배당이다. 그러나 교회 본질에 충실한 예배당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탑도, 밤을 밝히는 화려한 네온사인 십자가도, 창문도 보이지 않는 회색 벽돌의 단층 건물이다. 스스로 교회임을 드러내지 않고 몸을 낮춘 듯하다. 오직 기도하고 위안받고 성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단순 명료하게 지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비도 받지 않고 지어준 예배당이라는 것도 이 작은 교회가 주목받는 이유다.
속세와 구별하기 위한 수반을 지나 지붕이 없는 좁은 출입 통로로 들어서면 마치 구원받기 위한 좁은 문 앞에 선 듯하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겨우 50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예배당에 신도석, 성가대석, 설교 강연대, 예배 준비대가 모두 같은 높이로 배치되어 있다. 성가대석 옆에는 오래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다. 의자엔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도 책을 펴 놓을 받침대도 없다, 화려한 조명도 방송 장비도 보이지 않는다. 천장에 길게 난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만이 벽면에 걸린 십자가를 비추고 있다. 골고다 언덕 같은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옥상에 오르면 3면이 벽돌로 둘러싸인 기도 공간이 있다.
하양 무학로교회에는 이 신축 예배당만 있는 게 아니다. 신축 건물 옆에는 교회 역사를 알려줌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나무 아래 평상이 놓여있다.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북편으로는 식당으로 쓰고 있는 1930년대에 지은 기와집이, 서편으로는 1960년대 누에를 치던 잠실을 개조한 스레트지붕의 사무실이 있다. 목사집무실은 사무실 한쪽 두 평 남짓한 작은 방이다. ‘?靖草堂’이란 현판도 방만큼이나 소박하다. 동편으로는 개척 당시 패널로 지은 예배당이 있고, 그 옆으로 느티나무와 벽돌 의자가 놓인 야외 예배당이 있다. 주위엔 경계인 듯 군데군데 낮은 벽돌담으로 둘러있지만 열린 공간이 더 많다. 우리나라 근대 가옥의 흐름을 보여주는 건물들과 새로 지은 예배당이 조화를 잘 이룬다.
◆ 종교의 화합을 열어가는 교회
▲ 2019년 봉헌 예배 모습
1986년 조원경 목사가 개척한 이 교회는 2019년 5월 26일 예배당을 새로 짓고 봉헌 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에는 목사와 신도들은 물론 은해사 돈관 주지와 말사 스님들, 대구대교구 원로신부와 수녀, 경상북도 향교발전협의회 회장과 유림 등 기독교와 가톨릭, 불교, 유교 등 여러 종교 관계자가 참석했다. 예배당 설계를 한 승효상 건축가도 참석했다.
이 교회 야외 예배당이자 주민들의 쉼터에는 돈관 스님의 헌금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당초 사철 푸른 소나무를 심을 생각도 했지만, 여느 마을 쉼터처럼 친숙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설계자의 의도로 느티나무를 택했다고 한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조 목사님과 아름다운 인연 영원히 이어 주십시오’라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교회 내에 사찰 주지가 기념 식수를 하고 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한다는 자체가 신선한 울림을 준다. 예배당을 지을 때부터 불교 신자들이 헌금해 종교 간의 벽과 갈등을 허물고 있어 주위의 시선을 받았다. 돈관 스님이 성전 건축이나 나무를 심는 데 보태라며 4차례에 걸쳐 600만 원을 내놨다. 조 목사가 불경을 배웠던 인연이 있는 영천 대각사 묘청 스님도 힘을 보탰다. 동화사 신도회장인 친환경 벽돌 생산업체 한삼화 대표이사도 벽돌 10만 장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공사비로 약 2억 원이 들었지만, 빚은 남기지 않았다.
조 목사는 “많은 분의 ‘거룩한 헌신’으로 새로 지은 이 성전이 사람들의 영적 공간이자 주민들의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 또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담을 쌓고 갈등할 게 아니라 그 벽을 허물고 관용하며 존중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했다.
▲ 교회 예배당 내부
목사와 설계자의 경건한 의도와는 달리, 주변에서 칭찬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비를 맞으며 드나들어야 하는 출입구, 불편한 의자, 어둡고 썰렁한 분위기를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성전 건축에 타 종교의 도움을 받고 종교화합을 이루려는 생각에 대한 배타적인 한국 교회의 태도에 큰 아픔을 겪기도 했다.
조 목사는 “몸이 편하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또한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가장 교회다운, 아름다운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에 대해 배타성이 없어야 한다. 유일한 것은 하나님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타 종교에 대해서도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 조원경 목사와 승효상 건축가
▲ 조원경 목사(좌)와 승효상 건축사(우)(사진=김종오 건축사진작가)
조원경 목사는 국가지정 민속문화재인 경산 상엿집을 중심으로 조상이 남긴 죽음의 문화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설립한 (사)나라얼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건축 철학으로 유명한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국내외에 수많은 명작을 설계했다. 두 사람은 수년 전 하양 무학산 상엿집 주변 전통상례문화관 자문과 설계를 의논하면서 만났다.
건축 업계 물정을 잘 몰랐던 조 목사가 7,000만 원으로 교회를 새로 짓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승 대표에게 물었더니 뜻밖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7,000만 원은 신도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건축 헌금이었지만, 건축 업계 시세로 따지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조 목사는 “개척 당시 교회를 패널로 얼기설기 지었는데, 하나님 계신 집이 누추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개척 30주년을 맞아 건물 보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꺼냈는데 승 대표가 선뜻 응해 줘서 많이 놀랐다. 새 성전을 짓기로 했을 때, 비록 규모는 작지만, 영성이 충만한 교회를 짓고 싶었다. 신앙이 깊은 승 대표에게 맡기면 그런 교회를 지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라고 했다.
승 대표는 “정말로 교회다운 교회를 건축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였다. 가난한 교회일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면 교회 건축은 근본적으로 신을 감동시키는 건축이 아니라 인간을 감동시켜야 한다. 우리를 선하고 연대하게 하며 이웃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하양 무학로교회는 조원경 목사와 설계를 맡은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의 건축 의도와 철학이 이심전심이 되어 지은 교회 본질에 충실한 예배당이다.
조 목사가 말하는 교회의 본질은 탁한 세상과 섞이지 않고 세상과 구별되어 정화되고, 순수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작은 음악회가 열린 야외 예배당
▲ 무학로교회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윤형주의 작은 음악회>
추석을 며칠 앞둔 9월의 어느 날 저녁 무렵 하양 무학로교회 야외 공연장에서 ‘윤형주의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이날 음악회는 명절을 맞이하여 타국에서 온 근로자, 학생,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기 위한 자리였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위해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는 못했다. 다문화 가정과 교회 신자, 이웃 주민, 나라얼연구소 회원 등 100명이 채 안 되게 참석했지만,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더했다.
가수 윤형주는 이날 사위인 바리톤 전병곤 성악가와 함께 하양 무학로교회에 왔다.
“경산 하양이라는 곳에 들어서면서 동요 ‘파란마음 하얀마음’이 생각났다. 하양은 하얀색처럼 맑고 깨끗한 것 같다.”라고 말한 그는 “해비타트 이사장을 맡으며 베트남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집을 여러 채 지었다. 다문화 가정을 만나 반갑고, 작고 아름다운 교회에 감동했다.”는 말로 음악회를 시작했다. 이어 기타를 치며 감미로운 음악으로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도 낭송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낭송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젊은 나이에 이국의 감옥에서 쓸쓸히 죽어간 시인을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지만 “시의 내용도 계절에 너무 잘 어울리고, 가수의 육성으로 듣는 시 낭송은 음악만큼 아름답다.”라고 감탄했다.
기독교 가정으로 두 딸과 사위까지 음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집안의 주제 음악이라며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도 불렀다. 전병곤 성악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9월로 개사하여 불렀고, 장인과 사위가 함께 정지용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한 ‘향수’를 노래해 고향을 떠나와 사는 외국인들을 위로했다. 또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지만 잘 버티어 주길 바란다.”며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주민들은 “TV에서나 보던 유명 가수를 이 작은 시골 마을, 지척에서 만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감동이 더 크다.”고 했다.
공연이 열린 장소는 평소 야외예배를 하거나 지역 주민들의 교제 장소로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하는 곳이다. 이날의 공연은 교회가 지향하는 목적에 충실한 행사 같았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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