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시는 갓바위부처님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1. 경산에는 갓바위부처님이 계신다
▲ 갓바위부처님(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
갓바위부처님은 경산을 상징하는 기표이다.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이나 경산 사람들은 갓바위부처님이라 부른다. 부처님 머리에 돌갓을 쓰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아마도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갓을 덧씌운 것으로 추정한다. 부처님 머리에 갓을 씌웠는데도 어색하지 않다. 잘 어울린다. 추정하건데 그때도 논란이 심하지 않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관성을 깨트리는 파격에는 저항과 반격이 나오기 마련이다. 경산지역에서는 갓바위부처님께 치성을 잘 드려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도 있고, 자식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게 해주신다는 영험한 부처님이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선본사에서 관봉으로 오르는 길 초입
정월 초나흘, 갓바위부처님을 뵈러 길을 나섰다. 와촌에서 팔공산으로 들어서니 차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분다. 도열한 벚나무 가지가 춤을 춘다. 그렇다. 봄은 항상 바람과 함께 왔었지. 바람은 잠자던 나무의 가지를 흔들고, 햇볕은 웅크린 꽃눈을 일깨운다. 갓바위 가는 길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자동차로 십여 분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헐빈하다. 부처님께 공양할 초와 쌀을 파는 가게도 있고, 찻집과 식당도 있다. 위쪽 선본사 주차장은 승용차와 관광버스는 올라갈 수 없다. 803번 시내버스만 들어갈 수 있는 터라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경사진 길을 20여 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아무렴, 소원을 이루려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갓바위부처님을 뵈러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가장 빠른 지름길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다른 길은 오른쪽 선본사 뒤편 산능선을 따라 걷거나 오르막 길 입구에서 왼편 산길로 우회하는 길도 있다.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려면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차를 타고 절 앞까지 들어갈 수 있는 여느 절과는 다르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사십 여분 올라가면 할아버지처럼 부처님이 반겨주신다. 한때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그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갓바위부처님은 관광 상품이 아니다. 오랜 세월 중생들이 마음을 위로받던 기도처가 아니던가. 기도는 정성이라 하는데, 이 정도 발품을 파는 성의도 없이 부처님께 소원을 빈다고 들어주실까.
관봉((冠峰, 해발 850미터)에 다다르면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사람들로 광장은 늘 북적인다. 사방을 둘러보면 멀리 진량 영천까지 사방 탁 트인 명당이다. 화강암 바위를 병풍처럼 두르고 가운데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큰 바위 하나를 통으로 새긴 부처님인데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삼배를 올리고 앉아서 부처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중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신의 형상이라기보다 인간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동네 큰할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친근하다. 변함없는 표정과 자세로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말하는 중생의 마음을 다 헤아려주시는 듯하다. 옆에서 보면 더 웅혼하다. 자연물인 바위에 형상을 새기고, 그 형상에서 영험한 기운을 받으려한 인간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어느 해인가 나는 혼자서 갓바위에 올랐다. 갓바위 바로 밑에 있는 공양간 앞에서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젊은 여인의 뒷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어찌나 공손하고 간절하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인의 절실한 간구가 내게 그대로 전이되는 듯했다. 나도 그녀의 몸짓을 따라 마음을 보태고 있었다. 여인이 저토록 절실하게 희구하는 것은 무얼까. 남편의 병고일까, 부모의 극락왕생일까, 자식의 아픔일까. 절을 하는 뒷모습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기도란 마음의 절실함이 몸짓으로 드러나는 것이니까. 갓바위부처님도 그 여인의 기도는 꼭 들어주셨을 것만 같다.
삶은 고해(苦海)라 했던가. 시대의 풍랑이 몰아치면 중생의 삶은 더 고달파진다. 마음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중생들은 갓바위부처님을 찾아 의지하면서 삶의 안위를 희구했으리라. 희한한 것은 갓바위부처님은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신다는 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어찌 소원이 한 가지만 있으랴. ‘한 가지 소원’이라고 못을 박은 갓바위부처님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무릎이 닳도록 계단을 오르내린 어머니의 간절함을 어찌 외면할 수 있느랴. 경산시에서는 대한리 계곡을 따라 둘레길을 조성 중이다. 갓바위부처님께 치성을 드리러 다니던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2. 진정한 사랑을 가르치는 갓바위부처님
▲ 참배단에서 내려다본 와촌 방면, 가장 높이 보이는 산이 무학산이다.
갓바위부처님은 법당 안이 아닌 관봉 꼭대기 바위에 앉아 계신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부처님 코앞까지 자동차로 가는 줄로 안다. 아니다. 차를 세우고 대구 쪽에서는 한 시간, 경산 쪽에서는 사십 분 정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 관봉 꼭대기에 그렇게 웅혼하고 인자한 부처님을 앉힌 의현대사의 안목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선본사의 기록에 의하면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한다. 갓바위부처님은 하늘을 지붕 삼아 천년이 넘도록 묵묵히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입시철이 되면 학부모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부산역 앞에서 경산 갓바위까지 관광버스가 다닐 정도이다. 실제 소원을 이룬 사람도 있을 테고, 이루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걸로 보아 소원을 이룬 사람이 더 많은 모양이다.
▲ 선본사
갓바위부처님을 뵈려면 팔공산을 올라가야 한다. 박물관이 아닌 야외 유적이나 유물을 답사하면 그 유적을 둘러싼 자연을 같이 읽는 안목이 필요하다. 관봉에 올라보면 의현대사가 왜 그곳에 갓바위부처님을 점지했는지 알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성지는 하늘과 맞닿은 곳이다. 갓바위부처님도 세속의 삿된 기운이 닿지 않은 곳에 계시니 기도의 효험이 좋을 수밖에. 행정상 정확한 표기는 경산 갓바위부처님이다. 대구 쪽에서도 갓바위 부처님께 이르는 계단길이 있다. 대구시민들도 날마다 부처님을 만나러 온다. 본래 부처님은 경계와 상관없이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 아니던가. 대구시와 경산시는 행정상 편의로 인간이 만든 경계일 뿐이다. 부처님의 이름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자본과 권력을 행사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행정소송까지 가게 했으니 갓바위부처님이 많이 언짢으셨겠다.
찾아오는 신도가 많으니 갓바위부처님을 관리하는 선본사가 거두는 재화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선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이다. 예전에는 신도들이 쌀을 주로 공양했다. 부처님 전에 바친 쌀은 공양간에서 지은 밥으로 중생에게 회향(回向)한다. 갓바위 바로 아래 공양간이 있다. 그 공양간의 상차림은 짠지와 된장국이 전부였다. 물론 공짜이고 설거지도 스스로 해야 한다. 짠지란 말 그대로 무나 배추를 소금에 절인 식품이다. 아무런 양념이나 조미도 않고 소금으로만 간을 한 선본사 짠지는 유명했다. 부처님 전에 올린 쌀로 지은 밥맛은 어디에 비할 바가 없다. 간소한 상차림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 최근에는 상차림에도 약간 변화가 있었으나, 코로나로 공양간 문은 굳게 잠겨있다.
▲ 갓바위 유리광전(삼천불을 모신 법당) 입구
갓바위를 오르다보면 팔공산이 화강암 지대라는 것을 실감한다. 내 눈길은 바위에 뿌리내린 나무에게 머문다. 하고많은 땅을 두고 하필 바위 틈새에 씨앗이 떨어졌을까. 어느 날, 바람에 홀연히 날아온 씨앗을 바위는 내치지 못하고 품었으리라. 바위 틈새에 쌓인 흙을 터전삼아 싹을 틔운 나무는 성장할수록 뿌리도 자란다. 안간힘으로 바위를 비집고 들어가 뻗은 뿌리를 보면 경외감마저 일어난다. 생명력의 실체가 눈앞에 있다. 가지를 키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는 날마다 물과 양분을 찾아 헤매었을 것이다. 바위 틈새로 뻗은 뿌리를 보면 박남준의 시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관계 /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도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 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 본다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 편 내어준 적 있었던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진정한 사랑이란 저런 것이리라. 내 한 몸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 갓바위부처님께 기도하러 가는 어버이들이 품은 사랑도 그러했을 것이다. 바위 틈새에서 자란 나무를 보노라면 삶의 벼랑 끝에서 갓바위를 찾아오는 중생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사업 실패로, 상실의 아픔으로 마음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 갓바위부처님이다. 절망의 끝자락까지 가 본 이라야 부처님 앞에 겸손하게 고개 숙일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갓바위부처님이 관봉 꼭대기에 계신 것도 인간에게 겸손과 비움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갓바위부처님을 향하는 중생의 발길은 이어진다.
<글 / 이운경(이경희)>
< 사진 / 무철 양재완>
'여 행 등 산 편 > 경산곡곡스토리텔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5(압독국 고분군. 영남대박물관)(경산인터넷뉴스) (0) | 2021.03.16 |
---|---|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4(마위지와 경산병영유적)(경산인터넷뉴스) (0) | 2021.03.02 |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2(용산산성)(경산인터넷뉴스) (0) | 2021.01.29 |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1(원효암)(경산인터넷뉴스) (0) | 2021.01.18 |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 10 (자인장)(경산인터넷뉴스) (0) | 2020.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