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양재완
며칠 전에 갔던 팔공산 등산에서 빠뜨린 코스가 있어 혼자 답사하러 갔다. 팔공산 왕건5길로 백안삼거리에서 평광 버스종점까지다. 등산로 입구부터 새로 가는 기분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날씨는 더웠으나 한번 왔던 길이라, 산에서 가장 험하다는 ‘깔딱재’를 넘고 ‘돼지코’ 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등산로 양편으로는 산딸기가 가시넝쿨 사이에 촘촘히 숨어 있었다. 가다가 따 먹고 가다가 따 먹고를 반복하다가 집에 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왔던 길을 되집어 내려가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땄다. 예쁜 장미에 가시가 있듯, 산딸기도 가시 속에 많이 달려있었다. 맛있게 먹을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가시를 헤집는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신혼시절, 처갓집 뒷산에서 손을 긁혀가며 가시넝쿨속의 산딸기를 따 주면 아내는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했다. 가시 덤불속으로 넘어지면서도 손에 들고 있던 산딸기는 놓치지 않았던 추억들이 새삼 돋아났다. 산딸기 담을 그릇이 마땅치 않아 점심 후 먹으려고 가져온 수박 담은 그릇에 담기로 했다. 평소에 혼자 등산을 자주 다니니 점심준비는 간단히 하는 편으로 떡, 과일, 생수와 캔 맥주가 전부다. 오늘은 수박을 썰어 가져왔기에 그 그릇을 비우고 담으려는 것이다. ‘돼지코’ 지점까지는 전번에 왔던 길이라 잘 올랐다. 군데군데 달린 산딸기를 따 담으며 가다보니 아뿔싸, 내려갈 지점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 코스는 처음이지만 팔공산등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여 어림짐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하나 그게 아니었다. 하산하는 길은 보이지 않고 능선만 끝없이 펼쳐졌다. 굽이진 능선을 따라가면 나오겠지 하고 가 보면 또 다른 능선이 뻗친다. 아차! 이러다간 종일 능선만 걷겠다 싶어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많이 지나왔었고 앞에 또 굽이진 능선이 보여 설마 하며 앞으로 갔다. 그렇게 오가기를 서너 차례, 결국엔 왔던 길로 돌아섰다. 세 시간 정도 예상한 산행이 두 시간 넘게 걸었어도 아직 산 위에서 헤매는 꼴이다. 산딸기를 따느라 지나온 지점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탓이다. 아니, 올라올 때는 분명히 외길로 된 능선만 보였기 때문에 방심한 탓이다. 길이 애매하다. 올라올 때의 그 길이 아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119로 전화를 걸었다. 현재 산속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으니 내가 있는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다. 산속이라 신고자의 현 위치가 표시되지 않으니 등산로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발밑으로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어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지만 올라온 그 길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구 근교이니 별일이야 있겠느냐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골짜기가 보여 하산길인가 싶어 내려 가 보니 나무넝쿨이 앞을 가렸다. 요것만 헤쳐 나가면 되겠지 하고 내려갈수록 넝쿨만 무성하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위로 올라왔다. 탈출구를 못 찾은 것이다. 내려가는 길을 찾으려 여러 번 헤맸더니 배가 고팠다. 능선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았다. 산딸기를 담느라 미리 먹고 남겨둔 수박과 맥주 한 캔으로 갈증을 풀었다. 급한 마음에 떡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길 찾기에 나섰다. 산딸기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밀폐 용기 뚜껑을 야무지게 닫았다. 길 찾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여기로 가면 될 것 같아서 가 보면 아니고, 저기도 아니었다. 저녁에 주선해 놓은 동창모임에 맞춰 산행 시간을 계산했는데 낭패였다. 비슷한 능선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아래쪽에 고속도로가 눈에 보였다. 곧장 그 방향만 보며 길을 잡았다. 더운 날씨에 짧은 소매만 입은 팔에는 가시에 긁힌 흔적이 하나둘 늘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빨리 산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산속에서 헤맨 지 세 시간 만에 시멘트로 만든 배수구를 만났다. 배수구를 따라 내려가니 이번엔 높은 둔덕이 앞을 가로 막았다. 안간힘으로 다시 올라서니 비로소 고속도로다. 대구에서 포항 가는 고속도로다. 목적지와는 반대편으로 온 것이었다. 고속도로 옆 펜스에 기대어 서서 119에 전화를 걸어 현 상황을 이야기했다. 잠시 후 긴급구호차가 왔지만, 자기들은 바쁘고 목적지까지는 모실 수 없다며 도로 옆 비상구를 통해 일반도로로 갈 수 있는 길까지 안내해 주었다. 아스팔트길을 걷는데 갈증이 확 몰려 왔다. 산동네라 구멍가게도 없었다. 몇 번이나 배낭에 든 산딸기 생각이 났지만, 그때마다 산딸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참았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집에 오는 한 시간 넘게 참았다. 집에 도착하여 산딸기부터 내놓았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이상하다 싶어 밀폐용기속의 산딸기를 보니 내가 딸 때의 그 모양이 아니다. 반은 물이 되어 있고 모양도 거의 으깨져 버렸다. 더운 날씨에 배낭 속에서 출렁이다 보니 곤죽이 된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가져올 때의 심정으로 다시 내미니 마지못해 한두 개 집어 먹곤 그만이다. 갈증을 참으며 가져온 산딸기 꼴이 그 모양이니 더 먹어보라는 소리도 못 하고 기가 막혔다. 서재에 들어와 책상에 앉았다. 산에서 길을 못 찾아 헤매며 목말랐던 생각은 아예 없어지고, 좋아하는 산딸기를 마지못해 입에 넣던 아내의 표정만 자꾸 떠올랐다. 집에 있자니 울화통이 터져 이미 늦어버린 모임에 간다고 나오며, 현관에 있던 죄 없는 신발을 걷어찼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었지만, 아내는 산에서 고생한 일 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등산원칙조차 무시하고 산행에 나선 나를 되돌아보게 된 것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리라는 마음만 믿고 산딸기조차 올바르게 갈무리 못한 나의 확실치 못한 정신상태도 나를 더욱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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