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닛돈이 쌈짓돈 양재완
워낙 더운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저녁 먹고 해가 선선해지면 둑길을 걷는다.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도 있지만, 부부끼리 걷는 사람들이 많다, 다정히 걷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어떤 부부는 덥지도 않은지 손을 꼭 쥐고 걷는다. 어느 날, 여니 때와 같이 걷는데 언성을 높여 싸우면서 걷는 부부가 앞서가고 있었다. 저절로 엿듣는 꼴이 되었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높았다. 남자는 여자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뒤에서 보아도 안쓰러울 정도로 다급해 보였다. “통장을 주면 되잖아.” “통장을 왜 주는데.” “요즘 세상에 통장 관리 안 하는 여자가 어디 있나? 통장을 자기가 관리하니 내가 이렇게 불편하게 살잖나?” “내가 뭘 불편하게 하더냐? 돈이 필요하다 하면 다 주었잖아.” “여하튼 나는 불편하니 통장을 내게 달란 말이다.” 더 들으려니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앞질렀다. 더 들어 봐야 가정 경제권을 누가 가지느냐로 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 요즈음 세상에 남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이가 든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가 젊었을 때 아내와 의견이 맞지 않아 길거리까지 나와서 다투었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과연 가정의 경제권은 누가 관리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직장생활 할 때의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다. 월급날엔 내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먼저 떼고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그러려니 하며 그 돈으로 살림을 꾸렸다. 봉투 속의 금액이 많고 적고를 따지지도 않았다. 매달 같은 날에 월급을 받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살았다.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할 때나 휴식기인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자영업을 할 때 아내와 함께 일을 했다. 개인 손님은 주로 아내가 맡았다. 아내는 손님과 흥정을 끝내고 셈을 치를 때는 꼭 나에게 돈을 건네라고 했다. 보통 손님은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돈을 건넸다. 하지만 꼭 한 말씀 던지고 돈을 건네는 손님도 있었다. “거래는 아주머니와 했는데 왜 아저씨에게 돈을 주라고 해요?” 아내는 웃고만 있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중국 사람입니다. 집사람은 곰이고요.” 현금이 들어오면 금고에 넣는다. 아내는 금고 관리를 내게 맡겼다. 생활비는 아내가 필요한 만큼 달라 하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을 했지만 아내는 생활비를 달라할 때는 괜히 미안해했다. 저녁 찬거리를 살 금액이 평소보다 많으면 혼자 많이 먹고 쓰는 것처럼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탓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생활비는 월급체계로 바꾸어 정한 날에 주기로 정했다. 물론 금액은 서로 합의하였다, 생활비로 인하여 마음 졸이며 남편에게 돈 달라 할 필요가 없어진 아내의 모습이 몹시 편안하게 보였다. 정해진 날에 돈을 받아 쥔 아내는 월급 생활 때처럼 감사하다며 받았다. 물론 나도 돈을 줄 때는 은행에서 빳빳한 신권으로 교환하여 깨끗한 봉투에 넣어 주었다. 아내는 은행에 들어갈 예금과 적금을 먼저 제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다 정기적금이 만기가 되면 자기에게는 큰돈이 필요가 없다 하면서 그 돈은 나한테 돌아왔다. 다른 적금이 만기가 되어 또 돈을 주길래 “앞으로 월급을 내리겠다. 이 돈은 생활비로 쓰라는 것이지 저축하는 돈이 아니지 않으냐”고 하니 웃기만 했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란 말이 있듯이 부부간에는 돈에 임자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산다. 돈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살림을 꾸리는가는 전적으로 그 가정의 문제이다.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감싸가며 가정을 이끌어 가면 통장을 누가 가지느냐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밤에 둑길까지 나와서 통장을 달라고 말다툼하는 부부를 보니 옛날에 우리 부부가 살았던 기억이 새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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