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량의 랜드마크, 토산못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0-08-18 오전 10:55:35
▲ 토산못둑 아래 넓은 들에는 아파트와 공원이 들어서고 옛 시가지에도 고층건물이 보인다.
토산못에 서린 백성의 한
토산못은 늘 그 자리에서 나의 귀향을 반긴다. 진량을 고향으로 둔 사람에게 토산못은 존재의 은유이자 뿌리와 같은 곳이다. 진량읍 초입에 들어서면 왼쪽 언덕에 진량중·고등학교가, 오른쪽에 진량산업공단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다. 그 도로를 끼고 진량읍 행정복지센터와 작은 공원, 아파트단지가 있다. 1991년 진량산업공단이 조성되기 전에는 나지막한 앞산이 토산못에 산 그림자를 드리우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진량면 소재지에서 성장한 나는 날마다 토산못을 바라보면서 학교를 오갔다. 겨울방학이면 토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보냈다.
《경산시지》(1997)에 따르면 토산못 조성 연대는 1740년경부터 1790년경까지로 장기간 공사를 진행했다. 총면적이 74,000㎡에 저수 능력이 188,7천 톤에 다다를 정도로 큰 저수지였다. 진량공단을 조성하면서 도로 부지와 행정복지센터와 공원 부지를 매립하여 예전보다 규모는 축소되었다. 농경시대에 농업용수 확보는 생존과 직결하는 문제였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저수지를 만들던 시절이었고, 물이 귀한 지역이라 담수를 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토산지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고는 마음이 아팠다. 저수지 축조라는 거대한 공공프로젝트에 동원된 백성의 고달픈 삶이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대규모 저수지를 만들려면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 이름 없는 백성이 강제 동원되어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인부를 관리하던 작업반장이 고약하게 굴었다고 한다. 횡포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그를 살해하고 암매장하기에 이른다. 시신을 매장한 곳이 ‘토산댁’이라 부르던 어떤 여인의 집이었다. 이런 연유로 못 이름을 ‘토산못’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시신을 매장한 곳이 하필 왜 토산댁의 집이었을까. 토산못 이름의 유래를 읽으면서 당시 저수지 축조 공사에 동원된 백성의 고초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진량은 지반이 청석이라 물이 귀한 고장인 데다 금호강도 멀리 떨어져 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두어야 농사가 가능했으리라. 기계나 장비도 없던 시절, 큰 규모의 저수지를 축조하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노동 착취도 다반사였으리라. 저수지 축조 공사에 동원된 백성이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런 이야기를 지어냈을까. 민담이나 설화는 역사가 감춘 진실을 품고 있다. 토산못은 백성의 한과 눈물을 머금은 채 오랜 세월 생명의 쌀을 키웠다.
시나브로 자연이 된 토산못
▲ 시민의 휴식처로 재탄생한 토산못을 가로 지르는 데크와 꽃밭이 어우러진 풍경이다.
진량읍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토산못 산책로 쪽으로 향했다. 서쪽 하늘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전까지 세차게 퍼붓던 장맛비가 멈춘 하늘에 불바다처럼 노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선홍빛과 분홍빛, 연보랏빛, 회청색이 뒤섞인 장대한 풍경화였다. 토산못에도 지상과 동일한 풍경화가 펼쳐진다. 태양의 뜨거움을 호수가 품어주는 저 아름다운 동행을 보라. 토산못은 자연을 다스려 쌀 재배를 위한 논물을 대려는 인간 욕망의 산물이었다. 인공의 저수지는 인간과 교감하고 어울리면서 시나브로 자연이 되었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역사를 만든다.
토산못은 대구 근교의 낚시터로도 유명했지만, 마을 사람에게는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는 수원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아낙에게는 공동 빨래터였으며, 아이들에게는 자연 놀이터였다. 1971년 마을 앞산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농약과 폐수가 토산못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마을의 부녀자들이 빨래통을 들고 골프장에 몰려가 항의를 하기도 했다. 초여름 모내기철이 되면 못둑 아래 수로 주변에는 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이 피었다. 구멍 난 속옷으로 동무와 물고기를 잡다 보면 까만 거머리가 다리에 붙어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런 날이면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토산못에 소금쟁이와 물방개가 헤엄을 치면서 동심원을 그리던 날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 토산못은 부들과 물옥잠, 노랑어리연꽃 등 수생식물이 자라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한다.
가뭄이 들면 토산못은 수면 아래 감추고 있던 속살을 드러낸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 못을 터는 울력을 했다. 물웅덩이에 모여 와글거리는 물고기를 잡는 마을 행사였다. 붕어와 메기, 자라가 많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자라를 보고는 신기했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으면 말나물을 채취했다. 말나물은 민물에서 자라는 수초의 일종이다. 톱날처럼 생긴 홀태라는 농기구에 양쪽으로 줄을 매었다. 그물을 치듯 못 바닥으로 내려 줄을 서서히 당기면 홀태에 말나물이 걸렸다. 마을 장년들이 지르는 고함소리가 토산못에 메아리쳤다. 어머니는 말나물을 얻어와 수돗가에서 몇 번이고 치대며 물때를 씻었다. 초록빛 말나물을 무채와 함께 초고추장에 무쳐 된장에 비벼 먹으면 봄기운이 입안에 가득했다.
또 하나의 전설, 최명진 선생
토산못은 경사가 가파르고 수심이 깊다. 한여름이 끝날 무렵이나 얼음이 녹을 즈음에 동네 아이가 한 명씩 빠져 죽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기 귀신이 아이를 잡아간다는 속설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최명진 선생은 1942년 진량소학교에 부임한다. 결혼도 안 한 미혼 교사로 시골 학교에 온 것이다. 이듬해 여름, 가뭄이 들자 못에는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선생은 체육 수업을 마치고 땀에 젖은 학생들을 토산못으로 데리고 갔다. 일학년이라 한 명씩 몸을 씻기는데 한 아이가 웅덩이에 빠진다. 웅덩이에 빠진 학생을 구하고 선생은 순직한다.
▲ 진량초등학교 교정에는 고 최명진 선생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진량초등학교에 가면 최명진 선생을 흑백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학생의 생명을 구한 정신은 숭고하다. 후손도 없이 돌아가신 선생님을 위해 학교는 매년 추모식을 거행한다. 선생의 희생정신을 기려 1973년 진량초등 교정에 추모비도 세웠다. 진량초등학교 6학년 때 최명진 선생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선생님 지도하에 6학년 여학생들이 제사음식을 장만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부추 같은 제수 물품을 한 가지씩 가져와 학교에서 전을 부쳐 제사를 지냈다. 제자를 구하려다 불귀의 객이 된 최명진 선생은 또 하나의 토산못 전설로 남아있다.
지금 토산못은 시민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동편 못가에는 운동기구와 정자가 있는 소공원이 있고, 꽃들이 핀 정원과 못을 가로지르는 데크도 설치되었다. 못에는 부들과 수련, 노랑어리연꽃 같은 수생식물이 자란다. 현대판 강태공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찌를 바라보면서 세월을 낚고 있다. 토산못의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저무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데크를 걷는다. 어둠이 내리자 형형색색 조명등이 켜진다. 옛날 토산못은 아이들에게 위험한 놀이공간이었다. 적당한 문명의 개입으로 토산못은 인간 친화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금 토산못은 시민의 위안처이자 휴식처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 저녁노을이 서녘 하늘을 물들이면 토산못에도 노을이 진다.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못둑을 뛰어다니던 아이는 중년이 되었다. 토산못과 함께한 시절은 내 삶의 기저를 이룬 시간이었다.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토산 못둑을 달리던 일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심연을 알 수 없는 토산못은 어린 내게는 두려움이자 광활한 자연의 세계였다. 진량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에게 토산못은 상징적 공간이다. 지금 토산못은 산업도시 진량의 상징물로, 시민의 휴식처로 새롭게 탄생했다. 산업공단이 들어서면서 인구도 늘고 도시도 성장했다. 예전 어릴 적 고향은 아니지만, 토산못과 함께 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습기 머금은 한 줄기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어느새 토산못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글 / 이운경>
< 사진/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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