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등 산 편/경산곡곡스토리텔링

경산곡곡 스토리텔링에 사진을 싣다 -2 (남매지) (경산인터넷뉴스)

무철 양재완 2020. 8. 31. 11:29

남매지에는 남매가 있었네!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0-08-31 오전 8:59:50

 

경산의 센터럴파크가 된 남매지.

 




시민휴식처 남매공원

 

연잎이 푸르다. 구겨진 한지같이 말려있던 잎이 벌어져 넓은 품이 하늘을 받들고, 속살을 드러낸 꽃잎이 연밥을 밀어 올리며 여물어 간다. 지루한 장마를 건너온 연잎은 처연하다. 남매지에 연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된 기억은 아니다. 경산 자인에서 대구의 학교로 통학하면서 버스 안에서 내다본 남매지는 그냥 평범한 저수지였다.

 

본래는 저수지를 동서로 가르는 도로가 놓여 있었다. 도로 아래 남북으로 물이 서로 흘러 모이도록 다리를 놓았다. 시외버스를 타고 그 도로를 지나 대구로 오갔다. 그때는 길을 사이에 두고 작은 못과 큰 못으로 나누어져 있어 남매못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위쪽에 있던 작은 저수지를 누이못, 아래쪽 큰 저수지를 남동생못이라 하고 합하여 남매지라 불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쪽에 자리한 누이못이 경상북도 교육청 정보센터와 경산경찰서 부지로 지정되면서 메워졌고 지금은 그 위에 높다란 공공청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28년 축조되어 오랫동안 임당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왔지만 주변의 도시화로 관공서와 아파트가 들어서며 점차 그 기능을 잃고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바뀌었다.

 

경산시 중심에 넓게 자리하고 경산시청과 보건소, 경찰서, 경상북도교육청 정보센터, 경산중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생활관 등 경산시의 주요단체들이 병풍 두르듯 감싸고 있다.

 

경산시는 2009~2011년 남매공원 조성사업으로 저수지 둘레에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만들고 수중 분수와 수상 공연장, 수중 테크길, 바닥분수 등을 조성했다.

 

 

수변 산책로 2.4를 걷다

▲ 남매지 산책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바닥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며 뜨거운 대기를 씻어내고 있다. 나들이 나온 꼬마들이 풀밭의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물줄기가 공중을 휘저을 때마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종종거린다. 투명한 물방울들과 아이들은 곧 하나가 된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군데군데 저수지 산책로로 통하는 길들이 있어 어디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보행자 길과 자전거길이 의좋은 남매처럼 2.4를 나란히 걷고 달린다.

 

북쪽 둑길은 500m 소담길이다. 엄마와 아기를 위한 길이다.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증진하고 출산 친화적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14년 경산시 보건소가 조성했다.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소담길 끝에서 동쪽 길로 접어든다. 못 가까이 집이 늘어서 있고 창들은 남매지를 향해 열려 있다. 눈길을 저수지 쪽으로 돌리니 잠자리 날개 같은 돛을 달고 물 위를 바람처럼 떠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영남대 생활관 아래 소나무 숲 사이에서 좁은 침목 계단이 사다리처럼 내려와 있다. 경산고등학교의 높은 축담 근처를 지나니 어린 버드나무와 왕버들 사이로 수중 데크길이 열려 있다. 수면 위에 떠 있는 듯 물과 가깝다. 긴 장마로 물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수상광장은 해변 같다. 길은 연꽃 식물원과 수생식물원으로 이어진다. 조성 당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연꽃 모양으로 모형을 만들고 세계 각국의 연을 심어 연꽃 식물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수년이 지난 지금 살아남은 외래종은 많지 않다. 다만 이 땅의 여느 저수지에서 볼 수 있는 홍련이 식물원을 벗어나 못 가장자리를 넓게 차지하며 세를 확장해 가고 있다. 연꽃도 아마 고향을 떠나서는 살아가기 힘든 모양이다.

▲ 김윤식 시인의 시비와 가수 방운아의 노래비.

 

길 건너 경찰서와 교육청 정보센터가 올려다 보인다. 보건소 뒤편에는 용성면 출신 김윤식 시인의 시비 '아직도 체념할 수 없는 까닭'과 서상동 출신 가수 방운아의 '마음의 자유천지' 노래비가 서 있다. 지역 문인협회에서는 이곳에서 가끔 시화전을 연다. 수상 공연장과 수변 공연장에는 주말이면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공연이 열리고, 가족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남매학교도 열린다.

 

어느 사이 한 바퀴를 돌아 매점과 수중 분수 조작실 앞에 다가서니 출발할 때 무심코 지나쳤는데 커다란 우체통과 작은 우체통 2개가 남매처럼 나란히 서 있다. 기다림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 위해 설치된 이 우체통은 1년 후 전달되는 우체통과 6개월 후 보내는 느린 우체통이다. 엽서와 펜,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받침대도 있다. 엽서에는 남매지의 야간 분수 쇼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다. 남동생에게 엽서 한 장 써 보내고 싶다.

▲ 여름밤 남매지의 수중 음악 분수쇼.

 

내친김에 석양과 야경도 보려고 벤치에 앉는다. 붉게 물든 하늘이 호수에도 담기고 사람들도 모여든다. 아이들만 바닥분수에 모여있는 낮 풍경과는 달리 여름밤의 남매지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멋진 분수쇼가 열린다. 신나는 노래의 박자에 맞춰 형형색색의 물줄기가 솟았다 흩어지며 공중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 수중 테크길에도 오색 등이 켜진다.

 

 

슬픈 전설을 품은 남매지

 

남매지는 아주 옛날 가뭄이 심했던 해에 농작물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것을 본 농사꾼 남매가 축조했다고 전한다. 남매지란 이름이 붙게 된 데는 애틋한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경산 어느 마을에 오누이와 눈먼 홀어머니가 가난하나 정답게 살았다. 오빠는 남의 집 머슴살이 중에도 틈틈이 공부하여 입신출세를 꿈꾸었다. 아버지는 과거에 실패한 후 홧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아들은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의 원을 풀어 드리리라 결심한다. 책이 없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품삯 대신 책을 빌려보는 어려움 속에서도 문리가 터졌다.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갔다 오려면 적어도 1년 머슴살이한 새경은 있어야 했지만 돈이 있을 리 없다.

▲ 남매지의 석양.

 

누이동생은 어떻게 하든 돈을 마련, 오빠를 출세시키고 아버지의 한도 풀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황부자 집에 식모살이할 것을 약속하고 돈을 구해 오빠를 한양으로 보냈다. 오빠가 떠나자 부랑배인 황부자 아들은 우격다짐으로 처녀를 겁탈했다. 정절을 잃은 처녀는 마을 앞 커다란 못에 몸을 던졌고 어머니는 딸을 건지러 들어갔다가 함께 숨지고 말았다.


아들은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했으나 기다리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슬픈 소식뿐이었다. 호강시키려던 어머니도, 기뻐해 줄 누이동생도 한꺼번에 잃어버린 아들은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는 황부자 아들의 비행을 상소하는 글을 남긴 채,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잠든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불쌍한 오누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못을 남매지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죽음을 부른 또다른 전설도 있다. 남매지가 축조된 이후 이 지역에 가뭄이 계속되어 못 바닥이 드러날 무렵이었다. 오씨들이 모여 살던 이 마을에 주민 한 사람이 장에 갔다가 밤늦게 마을로 돌아오는데 남매지 중앙에 파란 불이 반짝이고 있었다고 한다. 이상히 여겨 가보니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막대를 꽂아두고 이튿날 아침에 동민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땅을 파보니 1m가 넘는 큰 가물치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가물치를 잡아다 끓여서 나눠 먹었는데, 얼마 후 모두 복통을 일으키며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보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도 있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던 1960년 가을, 당시 경산에 있던 300개 넘는 못도 대부분 고갈되었고 남매지도 바닥을 보였다고 한다. 기우제를 지냈고, '못장을 보면 장꾼이 헤어지기 전에 비가 온다'는 옛 속설에 따라 못 바닥에서 장을 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다시 쓰는 남매지 전설

 

전설은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다. 선조들이 이곳에 모여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는 동안 남매지가 있어 임당들을 살찌우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대를 이어왔다. 삶의 젖줄이 되어오다 시대의 변모와 함께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이 된 저수지가 왜 슬픈 전설만 품고 있을까 생각하니 지역민들의 정서가 녹아있다. 요즘도 권력형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세상을 들썩이는 걸 보면 있을법한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슬프고 억울하다. 이야기라도 만들어 돈과 권력에 항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매지는 아이들의 놀이터이며 시민들의 쉼터가 됐다. 여가 생활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일상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뉴욕 맨해턴의 센터럴파크가 있다면 경산엔 남매지가 있다. 남매지 전설도 다시 쓰면 좋겠다. ‘~그리하여 남매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이면 좋겠다. 지역 문인들이 남매지를 소재로 아름다운 작품을 쓰고, 남매공원을 중심으로 미담이 퍼져나간다면 또 다른 전설이 되지 않을까.



 

경산문인협회 추영희 시인은 경산의 저수지를 이렇게 노래한다.

 

내리는 햇살이 어디서 가만가만하여지는지

어디서 다시 모락모락한 살림이 되는지

이곳의 어느 한 길을 가기만 해도 다 안다.

이 땅의 자궁 같은 남매지에서 어느 방향이든 길을 들어도

경산의 길이란 길은 어김없이 들을 끼고 순한 산들을 내어놓는다.

몇 발치만 걸쳐지면 하늘의 우물 같은 연못들,

다시 또 다른 못물들 무엇 하나 같지 않은 화폭으로 담기는 것

여기선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어디서 이 많은 호수가 와서 각기 다른 이웃을 끼고 도는지

기름진 압량벌 건흥 벌판에 이르면

연지의 물입김이 온통 연꽃향을 흘리는 것, 이뿐이랴

온 들을 내려보는 동자지가 연지를 건네주며 가끔씩 끄덕이는 못물들

벌판의 옹달샘 같은 인각지가 샘터 같은 반월지를 건네는

건흥벌판 너른 옷자락을 쥐고

어디든 고운 길들이 호수에 호수를 건네는 경산

국도변 이팝꽃 사이로 미처 익히지 못한 동네와

그림속 물비늘이 또 반짝인다

진못, 새못 같은 잘 불리는 이름보다 더 곱게 담긴 작은 저수지가

압독국 유적처럼 그윽하다 곡식과 소산들이 모두 다 호수를 닮았다.

작은 습지들마저 제각기 선한 풍경을 거느리고

오래전부터 넘치지도 않고 쉬이 마르지도 않는 곳

내리는 햇살이 그림같이 헹구어져 호수의 손들이 되고

그리하여 나무가 되고 순한 흙이 되어

길이 길을 가게 한다.

 

- <추영희 시인의 호수지대> 전문

 

어린 시절 남매지와 맞닿은 곳에서 살았다는 이현재 수필가의 작품 '남매지'에도 남매가 등장한다.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네 살 아래 여동생과 장마가 한창이던 여름날 못 둑을 지나 토끼풀을 뜯으러 갔다가 소나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추억을 풀어내고 있다.

 

마당에 있던 감나무에 올라가 남매지 건너편을 바라보면 멀리 도시락 공장이 보였고, 커다란 버드나무가 우뚝 서 있었고, 대부분이 벌판으로 토끼풀이 많았던 곳. 장마철 잠시 비가 멈춘 틈을 타 토끼풀을 뜯어 돌아오는 길, 천둥과 번개가 치고 퍼붓듯 쏟아지는 빗속에 못 둑과 이어진 길은 황토로 뒤덮이고 동생과 비닐이 찢어진 우산살을 맞잡고 죽을힘을 다해 집으로 돌아오던 소년의 이야기는 한편의 동화 같다. 토끼풀 자루는 손을 떠난 지 이미 오래, 어린 동생을 잃어버릴까봐 우산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던 소년, 신발을 잃고 우는 동생을 업고 뛰었던 초등학생 오빠의 이야기는 충분히 아름다운 전설이 되지 않을까.


<글 / 천윤자 수필가>
< 사진/무철 양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