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족 생 활 편/나 의 글 방

(수필) - 배려

무철 양재완 2019. 3. 3. 00:53


 




  

배    려

양 재 완




단체여행에서 약속 시각에 정확히 맞추기는 어렵다. 한두 사람은 꼭 늦는다. 더군다나 나처럼 세월아 가거라.’ 하며 바쁠 게 없는 나이 든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책임을 맡은 사람이 늦으면 문제가 다르다. 보통 총무를 맡은 사람이 진행하는데 대가 없이 봉사하는 자리라도 진행 하다 보면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신경질보다 양보나 배려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가을 소풍날이었다. 계룡산 갑사를 거쳐 대전에 있는 장태산자연휴양림으로 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메타쉐콰이어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회원들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나는 10년째 총무를 맡고 있다. 친구들에게 휴양림에 관한 설명을 해준 후, 2시간 동안의 구경할 시간을 주었다. 나는 친구들이 돌아올 시간을 생각하여서 한 시간 내외의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K와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K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지만 세 살이나 연상으로 내가 형처럼 대하는 마음 넉넉한 친구이다.

제법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랐다. 정상가기 전에 있는 전망대에서 휴양림의 곱게 물든 가을을 감상했다. 메타쉐콰이어가 주홍색 물감으로 산과 휴양림 전체를 색칠해 놓았다.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 때문에 서둘러 정상으로 갔다. 정상에 올라서 보니 처음 보는 등산로가 눈에 띄었다. 산세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서 어디로 가든 목적지로 갈 거라 짐작하고 그 방향으로 걸었다. 왼쪽 아래의 잔잔한 장안저수지를 보며 임도까지 내려와 주위를 살펴보니 모퉁이를 돌아가면 목적지에 갈 것 같았다. 저만큼 가까운 거리에 농장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보였다.

문제가 생겼다. 농장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한다.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단다.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갔으면 되는데 호기심 때문에 다른 길로 온 것이 후회되었다. 시계를 보니 꼭 보아야 할 명소를 못 보게 생겼다. 나만 믿고 따라온 K에게 미안하기가 그지없었다. 할 수 없이 되돌아오며 미안하다고 몇 번씩이나 사과하자 난 괜찮았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배려심이 물씬 묻어있었다.

결국 스카이타워 구경은 포기하고 주차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집결 시간까지는 십 여분이 채 남지 않았다. 숨까지 헐떡이며 뛰어가는 데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 바른 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B였다. “뭐 하노. 지금 니만 기다리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오 분 전이었다. “알았다. 빨리 가고 있다.” “총무가 미리 와서 기다려야지. 빨리 온나.” 뿔난 음성이 귓전을 쌩하고 지나갔다. “너거는 언제 시간 딱 맞춰 다녔나. 아직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야단이고.” 이런 말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았다. 조금 있으니 또 전화가 왔다. “전부 다 와 있다. 언제 올라카노.” “한 오 분쯤 늦겠다. 친구들한테 이야기 좀 잘해 주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가 끊겼다.

정말 신경질이 났다. 총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여행을 갈 적마다 늦게 오는 친구가 있으면 내가 감싸주었다. 누가 투덜거리면 그럴 사정이 있겠지. 우리가 뭐 바쁠 게 있나. 좀 기다리면 곧 올 거야 하며 다독거려 줬다. 그런데 어쩌다가 총무가 좀 늦기로서니 그사이를 못 참고 전화질이니 약이 올랐다. 보이기만 하면 욕을 퍼 대고 싶었다.

헐레벌떡 주차장에 도착하니 친구들은 버스 주변으로 흩어져서 끼리끼리 잡담을 나누며 있었다. 전화한 B가 보이지 않아 버스에 올랐더니 저 뒤편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소태 씹은 표정으로 시익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성질이 났지만 참았다. 차를 출발시키며 마이크를 잡고 오늘 수고했습니다.” 인사부터 한 다음, 길을 잘못 들어 스카이타워도 구경 못 하고 바삐 뛰어왔지만 이렇게 늦었다며 사과를 했다. 친구들은 별로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주었다.

누구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마구잡이로 하는 경우가 있다.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에 상대방은 마음이 아플 수가 있다.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서 말을 가려가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잘못으로 인하여 꼭 봐야 할 곳도 못 보고 그냥 돌아온 K가 베풀어 준 아량을 B에게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마음 같았으면 신경질을 내려 했으나 K 덕분에 생각을 바꾸었다. 뒷좌석의 B를 보며 니 오늘 참 고맙데이. 다른 친구들은 총무가 정해진 시간에 안 보여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는데 니는 두 번이나 전화하며 나를 챙겼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더라. 진짜 고맙데이.”라고 웃으며 고개를 꾸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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