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만개한 대구가톨릭대 효성캠퍼스에서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둘레길을 걷다
▲ 대구가톨릭대 효성캠퍼스 전경
인근 주민들도 자주 걷는다는 대가대 둘레길을 찾아 나섰다. 정문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붉은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이고 정면에는 교명 이니셜을 나타내는 DCU 조형물과 뒤쪽으로 성모상, 본관 건물이 보인다. 2014년 조성된 3.3㎞ 둘레길은 효성 캠퍼스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미리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100주년 기념광장에서 출발하여 취업·창업센터~김종복 미술관~성안나관으로 가라고 했다. 좌우로 늘어선 은행나무길 오른쪽으로 취업·창업센터가 보인다. 캠퍼스는 만개한 벚꽃으로 환하다. 전 세계를 강타한 역병으로 두 해 동안 한산하던 학교는 다시 생기를 찾은듯하다. 풋풋한 젊음이 꽃처럼 아름답다. ‘2022 신입생 꽃이 피었습니다’ 신입생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있다. 그래, 꽃 중의 꽃이 너희들이지.
우선 눈길이 닿는 곳으로 발길을 돌려 동문 쪽으로 향했다. 안내판이 스트로마톨라이트 보존지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둘레길의 마지막 어느 지점으로 본 것 같았는데 아마도 반대 방향으로 들어선 것 같다. 둥글게 이어진 길은 거꾸로 돌아도 원점에 올 것이다. 미술품을 마지막에 여유있게 보려는 계산도 염두에 두었다. 운동장과 체육관, 그리고 몇 개의 건물을 지나고 작은 언덕으로 들어서니 산책하기 좋은 흙길이다. 오른쪽 아래로 난 계단이 학교 밖 조산천으로 연결되어 있고 물 건너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다. 길 양쪽에 벚꽃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니 꽃잎이 날린다. 꽃 사태가 난다. 몇몇 학생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 일행도 꽃비를 맞으며 그림 속으로 걸어간다. 등산복 차림의 주민 몇이 앞서 가고 있다.
▲ 스트로마톨라이트 보존지
미래인재관 뒤에 스트로마톨라이트 보존지가 보인다.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의 생물퇴적화석으로 지구의 생명 탄생 초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해수나 담수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을 읽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스트로마톨라이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모양 또한 뚜렷한 것으로 평가돼 2009년 천연기념물 제512호로 지정됐다. 중생대 백악기 호수에서 형성된 것으로 박테리아화석 함유 정도, 화석의 보존 및 형태의 다양성이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생성 당시 호수의 규모나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큰 바위 모양으로 누워있는 화석 위 군데군데 보랏빛 제비꽃이 피어있다. 단단한 바위 위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린 작은 꽃이 경이롭다. 주변 바닥을 둘러보니 제비꽃이 무리 지어 있어 온통 보랏빛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다시 흙길을 따라 벚꽃 터널 사이로 들어가니 학교 밖으로 우뚝한 장군산과 저수지, 건너편 경일대도 온통 벚꽃 대궐이다. 저수지 아래쪽 자두밭은 누군가 숨겨놓은 비밀의 화원 같다. 솔밭길과 약초원을 지나니 조각공원이다. 잔디밭에 놓여있는 조각상과 설치미술은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품명과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미술대학 학생들의 작품일 것이라 생각하며 조각 공원을 지나 김종복미술관에 이른다.
▲ 김종복 화백 순환전시회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색과 보랏빛 색상이 강렬한 우람한 바위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종복 화백 순환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설악산과 울산바위, 가야산, 태백산맥 등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과 알프스, 몽마르트르, 센강 등 유럽의 풍경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를 일러 왜 산의 화가라고 하는지 단박에 알 것 같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 화백이 유화 77점, 수채화 3점, 드로잉 20점 등 100점의 작품을 20여 년 재직했던 이 대학에 기증하면서 건립된 미술관이다. 전시실은 자연의 채광이 그대로 스며들고, 로비에서 보면 통유리 너머 아름다운 캠퍼스 풍경이 펼쳐진다.
◆ 100년 역사를 지닌 대구가톨릭대학교
미술관에서 나와 예쁜 오솔길을 걸어서 100주년 기념 광장으로 향하다 보니 성안나관, 성마티아스관, 성마태오관, 성토마스모어관, 최요한관 등 캠퍼스의 건물마다 성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어 오랜 전통의 가톨릭 대학임을 느끼게 한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강당 앞 2만2천㎡에 조성한 기념광장은 ‘100년 대학’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철재와 석재로 만든 조형물, 석재로 만든 기념 문주(問柱), 잔디광장이 보인다.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와 벤치도 있어 학생과 교직원, 지역 주민들도 이용하는 편안한 휴식 공간이다. 광장 앞 기념관에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휴관 중이다.
100년 역사는 1914년 대구 남산동에 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에서 시작된다. 1994년부터는 효성여자대학교와 대구가톨릭대학교가 통합하여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교명을 사용했다. 2000년 들어 신학대학 학부과정이 이곳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교명도 대구가톨릭대학교로 바꿨다. 효성여자대학은 1952년 초급대학으로 개교하여 이듬해 4년제 대학으로 1980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1984년 일부 학과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효성캠퍼스가 조성됐다. 이제 효성이란 이름은 캠퍼스 이름으로만 남아있고,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대구 경북 유일의 여자대학은 사라졌다.
본관 뒤에서 시작해 성토마스모어관 앞까지 이어지는 길에도 만개한 벚꽃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녀 학생들이 어울려 꽃동산을 거니는 모습이 활기차다. 교양관 옆으로 오르니 커다란 팔각 정자가 있는 동산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근에서 오래 살았다는 지인은 야산과, 과수원, 다랑이 논이 있던 이곳에 학교가 세워졌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강의동과 건물을 지으면서 원래 있던 지형을 살려 옛 모습을 지닌 동산이 군데군데 보인다. 공학관 앞쪽에서 둘레길과 맞닿은 곳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잡목들이 우거진 자연숲 그대로 남아있고 숲속에는 오솔길도 나 있다.
정문~성모상~산학협력관~성마태오관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길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어 아름답다.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최근에 지은 건물이 많아 건물들조차 신선한 젊음이 느껴진다. 건물과 건물로 이어지는 길에도 성마리아로, 사랑로, 정의로, 용기로, 지혜로, 봉사로, 절제로, 희망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 걷고 싶어진다.
◆ 캠퍼스에서 추억에 잠기다
외곽 둘레길만 걷다가 미처 보지 못한 명소를 찾아보려고 다시 들렀더니 그사이 벚꽃은 지고 영산홍과 왕벚, 연둣빛 잎들이 자리바꿈을 했다. 꽃보다 잎들이 더 눈부시다. 도서관 앞에 이르니 안중근 의사 동상이 보인다. 교문 옆에서 안중근 연구소도 본 듯하여 이 학교와 어떤 인연이 있나 싶어 새겨진 글을 읽으니 신실한 가톨릭 신자다. 옆으로 돌아 나오는데 옛 효성여대 교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예지와 순결을 상징하는 새벽별 모양의 교표를 보니 반갑다. 동문회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100년 기념 광장 동편 박물관 앞에는 효성여자대학교 전석재 초대 총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동상이 서 있다. 종합대학 승격 후에도 초대와 제2대 총장을 지내며 교육사업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동상과 교표를 보면서 비로소 이곳이 모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명도, 캠퍼스도 바뀌고 여자대학이 아닌 남녀학생들이 어울려 있는 캠퍼스 벤치에 앉아 아득한 세월을 건너 스무 살 젊은 나를 만난다. 모교라지만 대구 남구 봉덕동 캠퍼스에서 졸업했으니 이곳에서 학교생활 추억은 없다. 그러나 총장님은 생전에 교정에서 뵙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기억 속의 그분은 총장이며 사제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소박한 점퍼 차림의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다. 여자대학이었던 그 시절 교복을 입고 다녔다. 가끔 청바지 차림으로 등교하다 교내를 자주 둘러보시던 총장님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웃학교 남학생들의 교내 출입도 통제됐다. 그때의 상황을 지금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로 졸업할 때쯤에는 중고교에서도 교복 자율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통행금지 해제, 두발 자유화와 함께 시행된 조치였다. 그러나 중고교에서는 몇 해 가지 않아 교복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무분별한 자율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 않았을까. 그때는 옳았던 것이 지금은 옳지 않을 수 있고, 그때 옳지 않은 것이 지금 옳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입기 싫었던 교복도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79학번으로 10·26사태를 대학 1학년 때 맞았다. 동아리 체육대회가 예정된 토요일 학교로 갔더니 교문을 굳게 닫고 무장한 전투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학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우편으로 과제가 날아오면 시립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과제를 했다. 이듬해 1월에 학기말 시험을 치러 등교하는 날, 눈이 왔다. 경산에 살고 있었기에 대구에 있는 학교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대구와 경산에서는 드물게 많은 눈이 와서 버스 운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담티고개 아래서 버스가 멈추었고, 경산역으로 되돌아와 완행열차를 탔다. 고모역을 거쳐 동대구역으로 가는 동안 눈 덮인 들판은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대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가서 무사히 시험을 치고 돌아왔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2학년 때도 여전히 방학은 길었다. 졸업 후 어느 날 이전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황량한 벌판에 몇 개 건물만 있던 걸로 기억한다.
꽃이 지는 것도 잠깐이듯 40년 세월도 돌아보니 잠깐이다. 연둣빛 잎을 아무리 두 눈에 가득 담아보아도, 초록색 푸성귀를 아무리 먹어도 다시 푸르러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젊음이 더욱 아름답다. 캠퍼스를 돌아 나오며 성모상에 눈길이 머문다. 그 시절 봉덕동 캠퍼스에도 성모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양팔을 벌리고 세상의 모든 기도를 받아 하느님께 전해주려는 모습이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발은 뱀을 밟고 있다. 신자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어 마치 작은 성모 동산을 연상하게 한다. 나도 잠시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다. 코로나로 인해 다시 휴교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이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기를, 한때는 지역 여성교육의 산실이었던 이 대학이 사랑과 봉사의 교훈을 실현하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길…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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