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 묘목 주산지 ‘경산종묘산업특구’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경산의 봄은 묘목단지에서 온다.
▲ 하양 금호강변
입춘과 우수가 지났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혹독하게 느껴졌다. 실제 날씨보다 마음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설을 쇠고 나서부터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는 줄이 보건소 앞에서 남매지 둑까지 길게 이어지더니 하루하루 더 길어진다. 날씨도 꽁꽁 얼어붙어 아직 한겨울 같은데 마음은 더욱 춥다. 그러나 분명 어딘가에서 봄은 오고 있을 것이다. 성장과 노동이 멈춘듯한 시기에도 경산 묘목단지에서는 어린나무가 자라고, 하우스 안에서 복사꽃이 피고, 참외가 노랗게 익어간다.
▲ 경산종묘산업특구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경산에서 하양으로 향하는 길, 영남대학교와 압량 참외단지 끝자락에 이르러 왼쪽 화성로로 접어들면 ‘경산종묘산업특구’를 알리는 아치형 간판과 길 양쪽에 농원, 종묘농원, 영농 법인 등 농장 표지판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주변 들판도 온통 묘목들로 가득하다. 금호강에 이르는 2㎞정도의 길을 따라 농협 분소, 새마을금고, 유아교육 체험장이 된 초등학교 건물과 교회도 자리한다.
▲ 경산묘목 전시관
지난해 문을 연 묘목 전시관에 들렀다. 경산 묘목 100여 년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을 나오면 옆으로 묘목조합과 큰 저온 저장고가 보인다. 과일만 저온 저장고에 보관하는 줄 알았는데 묘목도 저장고에 보관하는지 궁금증을 안고 돌아 나오는데 한 농원에서 묘목을 고르는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의 안내로 트럭이 드나들 만큼 넓은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가족을 따라가 보니 수종에 따라 10그루씩 다발로 묶인 묘목이 묘포에서 옮겨와 팔려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슷한 묘목은 다른 색깔의 끈으로 묶어 수종을 구별해 두었다. 홍매는 벌써 꽃망울을 터뜨린다. 고른 묘목을 실으려고 트럭 위 비닐 덮개를 여는데 이미 묘목이 가득 실려있다.
이 많은 묘목을 어디다 심느냐고 물어보니 세종시에서 종묘소매상을 운영하며 매년 이곳에서 묘목을 사다가 판다고 한다. 군위에서 과일 농사를 짓는다는 또 다른 구매자는 사과나무를 골랐다. 사과도 종류가 다양하다. 전국 각지에서 묘목을 사러 오는 모양이다. 묘포장에서 일하다 온 안주인에게 사과 묘목 한그루 가격을 물어보니 1만2천 원이란다.
▲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신나로)이 뽕나무와 사과나무 묘목을 재배한 밭, 당시 일본인의 집 일부가 남아있다
지난 겨울, 추운 마음을 달래보려고 매화를 그렸다. 옛 선비들을 흉내 내어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그려보았다. 매화나무를 그리고, 숫자를 세어가며 81송이 꽃을 그려 넣었다. 그렇게 그린 매화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하루 한 송이씩 붉은 물감을 꽃잎에 찍어 홍매를 만든다. 난방은 물론 옷도 허술했던 시절 선비들은 매화 그림에 붉은색을 칠하며 봄을 기다렸다. 동지에 81송이 매화꽃을 그려놓고, 다음날부터 하루에 한 송이씩 색칠했다. 흐린 날은 꽃의 위쪽을, 맑은 날은 아래쪽을, 바람 부는 날에는 왼쪽을, 비가 오는 날에는 오른쪽을, 눈이 오는 날에는 한가운데를 붉게 칠해 날씨의 변화를 표시했다. 동짓날 시작한 구구소한도가 완성되는 때는 경칩과 춘분의 중간 무렵인 3월 중순으로 그때는 창밖 매화나무에 실제 꽃이 피었다. 옛 선비들이 추위를 이기는 마음의 겨울나기였다.
이곳 묘목단지 사람들은 겨우내 묘목을 키우며 봄을 기다렸나 보다. 구구소한도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벌써 매화가 피고, 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얼었던 땅이 녹는 입춘이 지나면서부터 묘목 시장은 바쁘다. 산 너머 남촌 어디쯤이나 화가의 붓끝을 타고 봄이 온다고 상상했던 내 관념은 허물어지고, 이곳 묘목 농가의 부지런한 손길에서 봄의 실체를 보고 느낀다.
◆ 100년 역사를 가진 경산종묘산업특구
경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종묘 생산지다. 하양읍 대조리, 환상리, 금락리, 진량읍 보인리, 봉회리 일대에는 넓은 묘목재배단지가 있다. 묘목 생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농업이민자들이 하양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1912년 일본인 과수 묘목 기술자 고바야시가 하양읍 대조리에 5천 평 규모의 밭을 마련하여 뽕나무 묘목 재배를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최대 수출 품목인 생사 생산을 위해 재배한 뽕나무다. 일본인이 살던 오래된 집과 잠사(蠶舍), 창고 등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이후 인근 농민들이 재배 기술을 배워 익히게 되었고, 참여하는 농가가 점차 늘었다. 1914년에는 일본인 시노하라가 국광, 홍옥, 골덴 등 사과 묘목을 일본에서 들여와 사과 단지를 조성하고 묘목 재배와 유실수 접목기술도 보급했다. 1920년대에는 뽕나무 묘목과 유실수 생산기반이 조성되었고, 금호강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 사과밭이 즐비했다. 대구 사과의 명성과 경산이 과일 주산지가 된 것도 여기서 시작된다. 해방 이후에는 그동안 축적된 접목과 재배 기술을 토대로 과수 묘목 생산에 들어가 전국적 수요 망을 구축했다. 이어 1965년에는 정부의 치산녹화계획 수립 과정에서 경산묘목단지 일대가 대규모 산림녹화 수종 묘목 지구로 선정되어 종묘와 어린나무를 정부에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과수 묘목을 체계적으로 생산 공급하게 되었고,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화훼, 조경수, 유실수 등 다양한 품목을 개발하여 전국 묘목 시장을 점유했다.
▲경산의 키낮은 사과나무로 조성한 과수원 전경
100여 년 전통의 종묘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680여 농가가 600여㏊에서 전국 과수 묘목 유통량의 70%를 생산하고 있다. 장미 묘목의 경우 약 90%가 이곳을 거쳐 나간다고 한다. 사과, 복숭아, 포도, 대추, 배 등 유실수가 2천만 그루, 장미 등 화훼와 관상수, 약용 나무가 1천만 그루 정도로 연간 3천만 그루를 생산한다. 이 배경에는 금호강 주변의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사질 토양에 기상재해가 적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겨울철 기후가 온화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다. 축적된 재배 경험과 전문화된 기술을 인정받아 2007년 ‘경산종묘산업특구’로 지정됐다.
◆ 묘목단지를 이끄는 사람들
▲ 경산묘목을 이끄는 사람들(오른 쪽이 서영수 한국묘목협회장이고 가운데가 정희진 경산묘목조합장 임)
나무 식재 시기를 앞두고 분주한 서영수 전국 묘목협회 회장과 정희진 경산묘목조합장을 묘목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경산묘목단지의 역사와 경산 묘목의 우수성, 현재 처한 상황을 풀어놓았다.
서 회장은 “경산 묘목은 대한민국 대표 묘목 브랜드다. 기후와 토양 등 묘목 생산 최적지로 전국에서 최초로 묘목 생산을 해온 곳이다. 100년이 넘는 오랜 재배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로부터 우수한 품질을 인증받고 있다.”며, “묘목은 심어서 상품으로 나가기까지 3~5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2월 초순부터 판매가 시작되고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다.”고 했다.
또 “1960년대까지 묘목 판매는 수입이 좋은 업종이어서 버스나 열차를 이용해서 외지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하양역이나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묘목을 사러 오는 사람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사과나무 묘목 한 그루를 팔면 인근 땅 한 평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경기가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묘목 생산자와 재배 면적 감소, 인건비 상승으로 묘목 가격도 상승하는 실정이다. 재배 면적 확대를 통한 규모화와 기술력 향상을 위한 생산자 교육 등 묘목 산업의 위기를 돌파할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
경산묘목조합을 이끄는 정 조합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종묘 산업이 허가제로 바뀌고 묘목 판매업을 하려면 농지를 소유하고 종자업 등록을 해야 하는 조항이 생겼다.”며, “조합이 묘목 식재와 관리, 영농 상담에 이르는 다양한 서비스를 농원과 생산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또 “경산종묘특구에는 우량 종묘 생산 기반 구축을 위한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와 집하장, 선별장, 저온 저장고를 갖춘 경산종묘유통센터가 있다. 우량 과수 묘목 생산을 위해 농가를 대상으로 종묘 생산 기술 전수와 유통 지도도 하고, 실습 위주의 접목사 양성 교육을 한다. 그래서 숙련된 묘목 농가와 종묘 관련 접목기술자 등 풍부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산종묘유통센터
이어 “농가에서 싼값에 묘목을 사려고 정상적인 묘목 판매 경로가 아닌 인터넷 등 검증이 되지 않은 루트를 통해 불량 묘목을 사다가 심고, 수년 뒤 과일이 생산되면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값을 주더라도 검증된 판매 경로를 통해 묘목을 사야 한다.”며 “현재 경산종묘유통센터의 운영을 묘목조합이 맡아 유통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대부잠수교와 금호강
▲ 하양 대부잠수교
쭉 뻗은 4차로의 화성로가 2차로로 좁혀지다가 거의 180도로 급하게 꺾이면 금호강이 나타난다. 길은 대부 잠수교가 되어 강 건너 4번 국도와 만난다. 강을 건너면 부호리다. 대조리와 부호리가 대부 잠수교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낮은 위치에 놓여서 폭우로 금호강의 수위가 올라가면 물에 잠겨 통행이 통제된다. 사람도 건너가다가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이 다리에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닌다. 난간 없이 작고 위험하지만, 809번 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오고 간다. 대조리와 환상리 지역 주민들을 하양읍과 가장 가깝게 이어주고 하양읍과 경산 시내를 가장 빠르게 연결하며 꽤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른다. 병아리 운전 시절 자주 이 길을 이용하던 내가 늘 가슴 조이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버스나 덤프트럭이 옆으로 지나가도 제법 여유롭게 통행한다. 도로 상태보다 통행량이 많아 사고 위험이 우려되지만, 운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창을 활짝 열면 금호강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일엽편주에서 뱃놀이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할아버지가 오래전 일본인에게 직접 접목 기술을 배우고 대동양묘원을 열어 어린 시절 대조리에서 살았다는 송노일 씨는 대부잠수교가 놓이기 전에 부호리로 가려면 목선을 타고 강 양쪽을 이은 줄을 당기며 건넜다고 추억했다. 강변에 살던 사공이 주민들을 건네주었는데 한 해 배삯으로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나락 한 말씩 받았다고 했다.
청둥오리와 철새가 노니는 강은 폭이 넓고 고요하여 흐르지 않고 머무르는 듯하다. 한낮에는 푸른 하늘이 들어앉은 강 위에 은빛 윤슬이 반짝이고, 해가 질 무렵에는 금빛 노을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하늘인 듯 강인 듯 착시에 빠져든다. 봄이면 청보리와 유채꽃이, 여름이면 해바라기와 홍초가,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가득하여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사과밭이 있던 주변 둔치에는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걷기에 좋다. 잘 늙은 노인처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대부잠수교도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다니는 숱한 이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명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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