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지에 달이 뜨면~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도심 속 수변공원 중산지
겨울 밤하늘에 두둥실 보름달이 떠올랐다. 중산지 호수에도 달이 있다. 호수 주변을 걷는 내 마음에도 달이 하나 와서 안긴다. 겨울이지만 기온이 푸근한 탓인지 운동하는 시민들이 몇 명 보인다. 밤이 되어도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인근 아파트의 불빛은 도시의 밤을 장식하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중산동은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그곳에 한때는 산업역군인 젊은 청춘들의 꿈의 직장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단란했던 가족의 추억이 서린 곳이었으리라.
중산지 근린공원과 인근 아파트 단지는 원래 삼성의 계열사였던 ‘제일합섬’이 있던 자리였다. 섬유를 생산하던 큰 공장은 경산에서 유일한 대기업 계열사였다.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그 공간이 한때 수출주역이던 섬유회사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제일합섬은 세한으로 바뀌었다가 산업구조의 변천으로 최첨단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대구시와 인접한 80여만 평의 공장부지는 신도시의 반짝이는 불빛으로 형질 변경했다. 한국인의 욕망을 상징하는 초고층 아파트는 과거의 기억을 세월 속으로 흘려보냈다. 밤하늘의 보름달과 중산지의 달은 그대로 이려나.
▲ 옛 제일합섬 공장 항공사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옛 제일합섬 공장을 찍은 항공사진이 떴다. 공장 뒤로 중산지가 보인다. 공장 앞으로는 잔디구장인 축구장도 있었다. 부친을 따라 회사 내 목욕탕을 드나들었다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공장에 가면 화려한 공작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넓은 공장부지에는 여러 수종의 나무가 있었다. 향나무와 살구나무, 벚나무가 즐비하여 봄이면 연분홍 꽃구름이 피어나곤 했다. 제일합섬 공장이 구미로 이전한 후에도 그 나무들은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여자 기숙사 앞 중산지 못둑에 갈대가 핀 걸로 보아 가을에 찍은 사진인 듯싶다. 여자 기숙사에 기거하던 이들에게 중산지는 고향의 저수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의 한 조각이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저수지는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초봄에 성암산에 중산지를 내려다보면 못 주변에 여러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다. 연둣빛 새순을 피워 올리며 봄이 왔음을 전해주었다. 그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난한 농촌을 떠나 꿈을 찾아 도시로 떠난 우리의 누이들은 제일합섬 공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산업체 학교에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인맥이 있어야만 했던 공장취업은 시골 소녀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작은 월급을 알뜰히 모아 저축도 하고 명절이면 부모님과 동생에게 줄 선물을 사들고 귀향 버스에 올랐을 것이다. 밤낮으로 돌아가던 기계소리가 멈춘 후 자본과 개발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개발과 이윤이라는 자본의 대차 대조표가 비껴간 유일한 공간이 중산지이다. 저수지는 공유자산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마트 앞 도로 자리가 사택지였는데, 양옥으로 지은 50여 호의 사택이 있었다. 직급에 따라 평수가 달랐고, 단지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많아 봄이면 벚꽃 만발했다. 아이들은 경산의 학교를 다니지 않고 대구의 학교로 통학을 했다. 제일합섬 근처 동네의 흔적이 아직 조금 남아있다. ‘중산상회’ 주인 아저씨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겠지.
공장은 철조망 울타리가 쳐있었고, 중산지도 금역의 공간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산지 아래에 돼지농장이 있었단다. 아마 사원들에게 공급할 식재료를 돼지농장에서 직접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수천 명의 사원들이 회사 안에서 세 끼를 해결했으니까. 그때 중산동 제일합섬은 경산에서 하나의 섬처럼 특별한 공간이었다. 굴지의 대기업 삼성의 계열사로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었다.
1999년 경산시와 ㈜새한이 중산동 옛 새한 경산공장 부지 80만4천여㎡에 아파트와 학교, 각종 문화시설 등이 집적된 계획도시를 건설키로 합의하면서 중산지구 개발이 시작됐다. 2000년 5월 새한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2005년 ㈜중산도시개발이 새한 경산공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개발계획을 변경해 사업을 추진해 왔다. 대구시와 접경지역인 중산동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색다른 풍경을 이룬다. 중산지는 시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산뜻하게 디자인했다. 중산지와 인근 공간의 변천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중산지는 근처 성암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둔 농업용 저수지였다. 중산동 넓은 들을 적시던 저수지는 제일합섬 공장 안으로 들어갔으나 본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근처 사월지 연못은 매립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쩌면 공장 안에 있었기에 연못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장이 철수하고 택지로 변경되었으나 십여 년 가까이 그 공간은 나대지로 남아있었다.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 중산지에서 밤낚시를 즐겼다는 강태공의 전설 같은 무용담도 있다.
중산지 근린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호수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호수 주변에 데크가 놓이고 여름이면 분수쇼도 한다. 야외 공연장도 있고 그늘막도 있다. 군데군데 의자가 있어서 쉴 수도 있다. 비포장 길에 맨발 걷기를 하는 이도 보인다. 화장실과 자전거 대여소, 주자장 같은 편리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인근 주민이 대부분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봄가을은 물론 여름밤이면 더위를 피해 산책 나온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도 한다. 아직은 어린 배롱나무와 느티나무도 세월이 흐르면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걷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멈추고 감상하는 풍경도 괜찮다. 중산지구는 지금도 아파트가 올라가는 중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한 공간에서 본연의 모습을 지닌 곳이 중산지이다.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을 노래한 기행가사에서 경포대의 달을 으뜸으로 꼽았다. 하늘에 뜬 달, 님의 눈동자에 뜬 달, 술잔에 뜬 달, 경포호에 뜬 달, 바다에 뜬 달 등 다섯 개의 달을 끌어와 경포호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중산지에도 한 달에 한 번 씩 보름달이 뜬다. 하늘의 달뿐만이 아니다. 화려한 문명의 불빛도 중산지의 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뜨지 않으면 어떠랴. 중산지에 가면 달빛에 버금가는 불빛의 향연을 볼 수 있으니까.
<글 / 이운경(이경희)>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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