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산(三聖山)에 세 번 오르다!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세 성현을 탄생시킨 삼성산
무작정 삼성산 등산길을 찾아 나섰다. 원효, 설총, 일연. 세 분 성현이 이 산자락에서 태어나셨다니 범상치 않은 산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상대온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올려다보니 산정은 평평한 듯 작은 봉우리가 세 개로 보인다. 삼이라는 숫자에 의미가 더해진다. 자주 동행하던 친구와 기억을 더듬어 머뭇거리는데 주민 한 분이 마을을 지나 내지 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라고 길을 알려준다. 마을에는 새로 지은 몇 채의 전원주택이 보이고, 갖가지 색깔의 장미로 정원을 꾸민 예쁜 농막도 눈길을 끈다. 마을 위쪽 새로 정비한 저수지는 오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길가 과수원엔 복숭아가 익어간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는데 찔레꽃 향기가 콧속을 자극한다. 여유롭게 시작한 길은 오를수록 좁아지며 숨이 차다. 쉬어갔으면 할 즈음 나무의자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르는데 눈앞에 펼쳐진 6월의 숲은 온통 초록빛으로 출렁인다.
계곡에 물이 흐른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초록숲 속으로 다시 발길을 옮기는데 앞쪽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둥근 모형의 물체가 보인다. 쓰레기통인가? 이 산속에 무슨 쓰레기통이지? 누가 옮기려고? 별 상상을 다 하면서 가까이 가보니 삼성산 유일의 약수터, 섬띠샘물터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지금은 매몰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수십 년 전만 해도 나무꾼이 식수로 이용했고, 옻오른 사람들이 이 물로 씻으면 낫는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장소로 보면 샘물터인 듯도 한데 샘터를 연상하기 어려운 모양새라 다소 실망스럽다. 주변의 돌을 모아 샘터에 둘러놓으면 어떨까 싶다.
샘물터를 지나니 길은 조금씩 가팔라진다. 이정표가 임도와 정상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임도를 내려다보니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더욱 가파르고, 잡고 올라갈 수 있는 밧줄도 매어두었다. 군데군데 나무 의자와 넓은 바위도 있어 앉아 쉴 수도 있다.
이정표를 지나 정상을 향해 30분쯤 오르니 헬기장이다. 해발 554.2m. 새천년을 맞아 세웠다는 표지석이 우리를 반긴다. 삼 성현의 얼이 서려있는 삼성산 품안에는 성인聖자가 들어간 성지곡, 성제지, 성잠사, 그리고 원효가 정상 언저리에 창건한 성지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기왓장만 출토되고 있다. 정상인 듯싶은데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산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다시 소나무 길을 따라가는데 자전거를 탄 일행이 뒤따라온다. 걷기도 힘든 산을 자전거로 오르다니 놀랍다. 비켜서 바라보니 일행 중에는 여성도 있다. 탄탄한 허벅지 근육이 부럽다. 얼마 가지 않아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울창한 나무에 가려 아래쪽 전망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올라온 길 맞은편으로 내려다보니 가파른 길이 보인다. 되돌아가기보다는 새로운 길로 가고 싶지만,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다음에 이 길로 다시 오르기로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 보다 편하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이 예쁘다. 초봄이면 복수초, 꿩의 바람꽃, 노루귀, 현호색, 개별꽃 등 야생화의 보고라니 내년 봄에도 다시 와봐야겠다.
◆ 단풍나무 길에서 추억의자를 만나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다음 날 다시 삼성산을 찾았다. 잔뜩 우기를 머금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해 우산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이번엔 지도를 꼼꼼히 챙겨보았다. 상대온천에서 남천면으로 가는 길, 삼성사를 지나 100m쯤 더 가니 송백재 삼성산 임도 입구다. 임도는 조곡재를 거쳐 평기리까지 15㎞ 길게 이어진다. 지역 마라톤 동호회에서 달리면서 쓰레기도 줍고 자연보호 활동도 펼치는 곳이다. 길을 따라 단풍나무가 줄지어 있어 가을이면 장관을 이루겠다. 전날 온 비로 해갈한 아기 손바닥을 닮은 단풍나무 잎에 빗방울이 매달려 밤하늘 작은 별처럼 반짝인다. 촉촉하게 젖은 길은 평탄하고 걷기에 맞춤하다. 왼쪽으론 삼성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남천면 신방리, 송백리로 이어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래쪽 산자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잘생긴 바위의자가 놓여있다. 잠시 앉아 쉬려고 보니 글이 새겨져 있다. ‘영남대 국사학과 배영순 교수님(1948~2017) 추억의자’. 비석에 새겨진 글은 많이 봤지만 의자에 새겨진 글이 새롭다. 생몰연대가 적혀있는 걸로 보아 직접 의자를 만들고 글을 새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좋은 추억을 나누어 가진 누군가가 만든 것이겠다. 생전에 함께 이곳을 자주 찾은 제자들이 아닐까. 그들은 가끔 이곳을 찾아와 교수님을 생각하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니 배 교수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를 위해 추억의자를 만들 정도면 참 잘 살다 가신 분 같다. 장황한 설명이 적힌 공덕비보다 그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이 길을 오가는 나그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준 그이가 고맙다.
4㎞쯤 걸었을까 갈림길이 나오고 삼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보다 훨씬 쉽게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는데 빗방울이 듣는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삽시간에 우두둑 빗줄기가 되어 내린다. 오랜 가뭄 끝에 오는 비가 반갑지만, 순간 당황스럽다. 우산을 펼쳐들고 산을 내려왔다. 평탄한 임도라 다행이다. 추억의자에 내려왔을 즈음 비가 멎어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내려다보이는 산자락과 마주 보이는 산에서 물안개가 산수화를 그리며 피어오른다. 이 길 어디에 나도 추억의자 하나쯤 만들어 두고 싶다. 함께 걸었던 이들과 이 시간을 추억하리라.
◆ 상대온천
삼성산 자락, 남산면 상대리 아랫마을 하대리에서 나고 자라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한 친구를 부추겨 다시 산행에 나섰다. 서금희 전 남산면장, 경산시에서 최초의 여성면장을 지낸 그는 고향 마을이라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안내해 줄 거라 생각했다. 마을 앞 저수지를 지나니 35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 마을 쉼터가 우리를 이끈다.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을 방불케 한다. 너와를 이은 정자와 그 앞으로 유연재사적비(儒硯齋事績碑)도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 서당을 열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삼성산을 바라보며 정자에 앉아 챙겨온 차를 마시는데 불어오는 산바람이 시원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터로 나갔는지 오늘은 우리가 이곳의 주인이다. 산길로 들어서니 산발치 과수원에서 일찍 익은 복숭아와 자두를 수확하고 있다. 길가엔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나그네를 유혹한다. 한참 오르다 보니 반곡지로 가는 길과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몇 해 전 봄날에 상대온천 입구에서 반곡지에 이르는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 길은 자동차도 다니는 길이었는데 주변 산등성이가 온통 복사꽃으로 덮였다. 그러고 보니 이 산자락 아래 복숭아밭이 즐비하다. 삼국유사에 복사꽃을 닮은 아름다운 도화녀와 비형랑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복숭아밭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을까
서 면장은 “어릴 적 상대리에 사는 친구네로 놀러 가면 겨울에도 개울에 물이 얼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마을 여인들이 빨래하기 좋았다”며 더운바위샘이라 부르던 이곳에 온천이 생기게 된 유래를 설명했다.
▲ 상대온천
맥반석 온천수로 전국에서 물 좋기로 소문난 상대온천은 부근의 논에 모를 심으면 모가 떠오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한 농부가 1972년 국립지질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하여 온천지대로 판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알칼리성 온천으로 황산이온, 염소이온, 과망간산칼륨 등의 광물질이 풍부하여 신경통, 관절염을 비롯하여 피부병에 효험이 있으며, 특히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82년 상대온천관광호텔의 완공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는데 한때 많은 사람이 찾았으나 지금은 시설이 낡고, 또 코로나로 인해 이용객이 줄어든 것 같다. 등산 후 내려와서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풀리겠다,
◆ 삼성현의 자취를 찾아서
▲ 남산면 하대리 소재 도동서원
귀갓길, 삼성현의 흔적을 찾아 하대리에 들렀다. 도동서원은 신라 10현 중 한 사람인 설총을 제향하기 위하여 1923년에 세웠다. 여천리에 있던 설총 가묘가 허물어져 옮기고 창건 당시 도동재라 불렀는데, 그 후 마을의 유림이 규모를 키우고 서원 간판을 달았다. 서원에는 사당인 경모사와 설총 신도비가 있다.
서 면장은 하대리 마을에 오래된 숲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마을의 서편 집들 뒤로 난 길을 따라 팽나무, 자작나무, 굴참나무, 회화나무, 말채나무 등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라숲이라고 부른단다. 문득 원효대사의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밤나무 ‘사라수’가 생각났다. 상대온천에 즐겨 다니던 시절, 이 앞을 많이 지나쳤는데도 처음 보는 숲이다. 숲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서니 자라지와 삼성현역사공원이 눈 아래 펼쳐진다. 삼성산을 세 번 오르고 나니 세 분의 성현이 새롭게 다가온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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