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산(到天山), 하늘에 이르는 산 원경(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하늘,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의 삶을 다하고 올라가 영원히 머무르고자 하는 곳 즉 천국이다. 우리는 그 천상낙원(Paradise)에 들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경산시에 이 하늘에 이르는 산이 있다.
경산시 자인면 단북리와 읍천리 그리고 진량읍 속초리에 걸쳐 있는 높이 261.1m에 불과한 나지막한 야산, 도천산(到天山)이 그곳이다.
마을 뒷동산인 이 산이 무슨 연유로 하늘에 이르는 산이라는 엄청난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뿐인 이름이다. 아마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이름에는 소망이 담겨있다. 도천산 이 거룩한 이름의 연유가 궁금했다. 도천산 기슭 마을 속에 있는 제석사의 원효성사 다례제 취재를 갔다가 ‘도천산 제석사’라는 현판을 보고 도천산이 원효대사와 관계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새벽(원효대사가 스스로 지은 법명 원효의 뜻)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아울러 하늘에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벽을 찾아 도천산에 올랐다. 이글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쓴다.
먼저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부터 털어놓는다.
25년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던 중에 어느 강사님으로부터 원효대사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강연의 신선한 충격에 지금도 다음과 같은 강연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원효대사를 일월(日月)로 표현한 교토 코산지(高山寺)의「원효에마키」(두루마리그림, 일본국보)
“원효는 우리 민족사에서 민중을 가장 사랑한 분입니다.
당나라로 가는 유학길에서 민초들의 원한과 고통이 녹아내린 해골물을 마시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의 깨달음을 찾았습니다.
그길로 출세가 보장된 유학을 포기하고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야단법석 춤을 추며 저자와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비며, 삼국통일 전쟁으로 갈갈이 찢긴 민초들의 상처와 원통함을 보듬어 민족의 해원을 이루었습니다.
원효는 부모·형제·처자를 잃고 비통과 도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을 노래하도록 했습니다.
이 세상의 아픔을 다 알고 있으며(觀世音菩薩) 저승을 주관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께 가서 다시 만나(南無) 행복하게 삽시다.”
원효대사는 우리 민족 사상의 새벽을 연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이지만, 민중의 아픔을 보듬는 이타행(利他行)의 삶을 산, 이 땅에 오신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 원효암, 원효봉, 원효대 등 원효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 설화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민중들로부터 큰 기림을 받았습니다.“
강연을 들으며, 원효대사의 탄신지인 경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대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20년이 넘는 무지의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새벽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하늘에 오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도천산에 오른다.
▲약 2.5km 길이의 도천산 둘레길
도천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자인공단 쪽 또는 대경대학 쪽으로 주로 올라간다. 약 2.5km 길이의 둘레길이 만들어져있고 정자와 운동기구도 놓여있다. 해발 261m에 불과하지만 가파른 구석이 있다.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상부로 갈수록 무덤이 많아진다. 천주교회 공동묘지에서부터 문중묘지 등 수많은 묘지가 산재해 있다. 풍수적으로 장군이 많이 태어날 명당이라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맥을 끊었다는 속설처럼 명당이라서일까? 나처럼 하늘에 오르고 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무덤들을 바라보니 1400년 전 새벽의 절절한 외침이 들려온다.
“일생이 얼마라고 닦지 않으며
헛되이 하루하루를 보내는가.
삶이 얼마라고 헛된 몸
일생 동안 닦지 않는가.
육신은 반드시 끝이 있으니
다음 몸은 어찌 할 것인가.
급하구나 급해, 급하구나 급해.”
쉬엄쉬엄 걷다 도천산을 예찬하는 시비를 만났다. 자인 출신 김석주 시인이 쓴 ‘도천산-하늘에 이르는 산’이라는 시가 화강석에 새겨져 있다. 찬찬히 읽어보니 “산이야 나지막이 높지 않고 아담하나 오르면 하늘나라 이른다니 신기하고 경이롭다”라는 내용이다.
하늘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닌 도천산은 불교에서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수미산(須彌山)을 뜻하지 않았을까.
불가에서 석가모니를 일월(日月)로 표현하는데, 원효대사도 “불법의 도량 세계의 일월”로 표현되고(1228년 일본 묘에요닌 저 권진기), 일연선사가 삼국유사에 기록한 사라수나 오색구름 등 원효의 탄생 이야기는 석가모니 탄생설화와 비슷하다. 이런 점에 비추어 원효대사의 탄생지를 추앙하고 대사의 불법을 상징하기 위해 도천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효대사가 언급되지 않은 시구에 의아함을 가진 채 정상부로 향한다.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욕망과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설명한다. 수미산 정상은 사악한 욕망이 선한 욕망으로 정화된 마지막 단계를 상징한다. 그곳에 제석천(帝釋天)이 있다.
내 속에도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욕망이 있을까. 다소 서글픈 생각이 사라지기도 전에 정상에 도착했다.
▲ 도천산 정상 표지석
정상에는 2000년 1월 1일 새천년 맞이 기념으로 경산시장이 세운 정상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는 “도천산이 자인의 주산이며 기러기가 함박산을 찾아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하여 도천산이라 이름하였고, 한 장군이 도천산 마루에 진을 치고 있는 왜적을 버들못으로 유인하여 섬멸시켰다는 전설이 있다...”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여기에도 원효대사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제 의아함이 아니라 실망감이 든다.
기러기가 함박산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까닭을 찾아봤다.
기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추구하는 사랑과 정의와 믿음을 상징하는 새다. 혼례 시 평생 사랑을 지키겠다는 사랑의 맹세, 먼 시베리아로 날아갈 때 교대 교대로 앞장서 바람을 막는 정의의 리더쉽, 동료 기러기가 대열을 이탈하면 몇 마리가 함께 남아 돌봐주다 기운을 차리면 다 함께 다시 대열에 합류하는 우애와 믿음을 상징한다.
함박산은 우리 조상들의 원주지인 하늘 그 ‘광명의 국토’를 상징하는 산이다, 산봉우리가 마치 해와 달처럼 둥글고 크게 밝고 높다.
표지석에 기러기가 함박산을 찾아 하늘로 날아간 까닭을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도천산 정상 표지석을 새로 써 본다.
기러기들이 함박산을 찾아 하늘로 날아갔다.
이 산자락 불지촌 사라수 아래에서 우리 민족 사상의 새벽을 연 원효대사가 탄생하여 사람들을 하늘, 그 광명의 국토로 인도했다. 그래서 이 산을 도천산이라 이름한다.
▲ 제석사 원효성사전 원효팔상도 탱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석사에 들려 원효성사전에 그려놓은 원효의 삶 도상화를 감상하며 도천산에서 새벽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이 탱화는 석가모니 팔상도처럼 원효의 생애를 8폭의 그림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경산시는 원효대사의 탄생지다.
거룩한 이타행의 삶을 산, 이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을 박물관이나 절간 속에 모셔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우리의 생활 속으로 모시는 운동이 탄생지인 우리 경산에서 펼쳐졌으면 좋겠다.
글. 사진 - 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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