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사의 탄생과 도천산 제석사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 도천산 제석사(到天山帝釋寺)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의 제석사는 경산이 배출한 삼 성현 가운데 한 분인 원효성사(617~686) 탄생지에 지어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민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아담한 절집의 앞쪽 길 건너에 중·고등학교가, 동편으로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있고, 뒤쪽에는 교회와 아파트가 둘러싸인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8월 말의 오후에 찾은 절집 앞 작은 공원, 기와를 얹은 정자에 어르신 두 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길손에게 쉬어가라며 복숭아와 포도를 내놓는다. 먼저 절집을 다녀와서 들르겠다고 하고 제석사로 향했다.
▲ 자인면 북사리에 소재한 도천산 제석사
‘到天山帝釋寺(도천산 제석사)’ 현판이 발길을 붙잡는다. 하늘에 이르는 산, 황제와 석가의 글자에서 따온 듯한 절집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예부터 지명은 주변의 지형과 특색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하늘에 이를만한 산은 어디에도 없다. 도천산은 제석사 북편 261m 높이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곳으로 소풍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발치 마을 안의 아담한 절집에 이 어마어마한 이름이 붙여진 데는 외형에서 느낄 수 없는 감추어진 내면의 무언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생긴다.
현판 아래 대문에는 근육질 남정네 같은 모습의 금강역사 그림이 사악한 무리의 범접을 막고 있는 듯 든든해 보인다. 대문 위 오래된 팽나무의 구부러진 생김새가 이 절집의 우여곡절을 품고 있는 듯하다. 경내에 들어서자 정면에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원효성사전, 왼쪽에는 삼성각이 있다.
대웅전 정면 문살에 수려하게 조각해놓은 사천왕상이 이색적이다. 석가여래부처님이 앉아계신 오래된 석조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두툼한 잎마다 꽃문양이 새겨져 있어 화려하다. 둘러보니 대웅전 안에 교회에서나 있음직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시대의 변화가 몸에 와닿는다.
▲ 원효성사전
대웅전 옆에는 원효를 모신 전각, 원효성사전이 있다. 들여다보니 중앙에 금동 원효상이 놓여 있고, 뒤편에는 그의 삶의 주요 장면이 그려진 병풍이 말없이 자리를 지킨다.
밤나무 아래에서 탄생한 아기 성사를 중앙에 두고 위에는 도솔천, 아래에는 출가해 설법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천상의 축복을 받으며 계를 받는 장면,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가려고 길을 가던 중 무덤 속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는 장면도 있다. 요석공주와의 인연으로 설총을 낳고, 금강삼매경과 십문화쟁론을 저술하고 입적하기까지의 모습도 보인다. 부처님의 생애를 8폭의 그림에 담아놓은 팔상도를 본떠서 <원효보살팔상탱화>라고 한다.
요사채 옆 우물은 도천산 정상 부근의 암반을 타고 솟아오른다. 원효가 창건한 사라사에 있었던 우물로 깊이는 약 16m 정도로 깊다. 내력을 더듬어 보니 신라나 고려의 귀족들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겉모양이 반짝반짝 새 우물이라 실감이 나지 않아 물어보니 최근에 분황사의 돌우물을 본 따 외형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뚜껑을 살짝 밀어도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과 원효성사전 사이에 제석사중수기념비와 함께 원효성사탄생지유허비가 서 있다. 절 곳곳에는 원효의 자취가 서려 있는 듯하지만, 천여 년 전 밤골의 모습을 떠올릴 밤나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절집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마당 한쪽에 송이가 몇 개 달린 작은 밤나무가 애처롭게 홀로 서 있다.
◆ 중창 불사를 거듭해온 제석사
제석사는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밭을 갈던 농부가 원효성사 탄생 추정지에서 불상과 탑신을 발견하면서 그 자리에 다시 지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효성사가 태어난 곳에는 부처가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때 함께했다는 나무 ‘사라수(娑羅樹)’가 있었다고 한다. 나무의 이름을 딴 사라사(裟羅寺)가 신라시대에 세워졌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제석사라는 의견이 다수다. 실제로 제석사에 남아있는 석조연화좌대와 부서진 탑신, 석등연와대석은 신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돼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린다. 삼국유사 또한 원효성사가 '압량군(현재의 경산시) 남쪽 불지촌(佛地村)의 북쪽 사라수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석사중수기념비」에 제석사는 1625년(인조 3) 유찬(惟贊)이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1802년(순조 2) 거사(居士) 손대권(孫大權)이 중창하였으며, 1910년 월파대사(月波大師)가 중창하였다. 그 뒤 1933년 만호(萬湖)가 중수하였으며, 1962년에 용해(龍海)가 대웅전을 지었고, 1965년에는 옛 대웅전 자리에 칠성각을 지었다. 제석사는 중창 불사를 거듭하는 부침의 역사 속에서도 그 이름을 유지해 왔다. 2003년 불교계 최초로 원효성사전을 건립하고 칠성각을 중창해 삼성각으로 개명했다.
◆ 원효성사의 탄생
원효성사의 속성은 ‘설’씨로 어릴 적 이름은 ‘서당(誓幢)’이다. 그의 어머니는 품 안으로 별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 서당을 잉태했다고 한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 담날과 함께 친정이 있는 경주로 향하던 중 밤나무가 즐비한 골짜기 ‘율곡(栗谷)’에서 갑작스러운 산기를 느낀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남편의 관복을 밤나무 가지에다 걸어, 장막처럼 두른 후 임시 산실을 마련한다.
산고의 시간이 끝날 즈음 휘황찬란한 오색구름이 소용돌이쳐 산실을 휘감았다. 구름은 사방으로 번져 밤나무 골짜기를 뒤덮었고, 이윽고 옷으로 만든 장막 안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이때 장막을 치기 위해 옷을 걸었던 밤나무를 '사라수'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원효의 출생은 석가모니의 탄생과도 닮았다.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위해 친정인 코올리성으로 가던 중 룸비니동산에 이르러 산기를 느끼고 무우수(無憂樹) 아래 산실을 마련하고 출산한 것과 비슷하다. 이후 원효의 어머니는 시아버지를 봉양하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원효는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출가 후 불지촌 초개사에서 정진하던 원효는 어느 날 문득 밤나무골의 사라수를 찾았다. 원효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를 위해 절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밤골에 밤이 익어 갈 무렵 아담한 절이 완성되었다. 신기하게도 절이 생긴 이후부터 주변의 밤이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변했다. 밤나무에서는 상서로운 빛이 났다. 밤송이의 크기는 예사 밤보다 컸고 ‘사라율’로 불렸다.
사라율과 관련한 일화도 전해진다. 절의 주지는 머슴에게 매일 저녁 끼니로 밤 두 톨씩만 내어주었는데, 이에 불만을 가진 머슴이 '배가 고파 견디기 어렵다'며 관아에 호소한다. 이후 관청의 관리가 자초지종을 확인하기 위해 관원에게 밤을 따오게 했다. 그러나 밤의 크기가 밥사발에 가득 찰 만큼 큰 것을 보고서는 머슴에게 주는 밤을 한 톨로 줄이는 벌을 내렸다고 한다.
◆ 원효성사 다례제
▲ 원효성사 탄신 1,404주기 다례재
해마다 단오 전날인 음력 5월 4일 제석사에서는 원효성사 다례제가 열린다. 지역 기관장을 비롯해 신도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참석한다. 육법공양, 헌향, 헌화를 한 후에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코로나19로 행사가 축소된 지난해 다례제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그리워요’라는 헌정곡 연주를 해 관심을 모았다. 삼국통일의 역사 속에 여러 전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민중의 아픔을 위로하고, 염불로 민족정신을 하나로 모았던 원효 스님의 지혜를 코로나19라는 국난 앞에 다시 청하는 내용의 곡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행사에서 사찰요리 전문가들이 정성껏 만든 사찰음식을 코로나19로 애쓴 지역 방역팀과 공공근로자에게 전달하고 응원했다.
원효성사는 신라 중기 불교 대중화에 힘쓴 인물이다. 귀족 사회와 상류층에서만 믿던 신라의 불교를 가난한 백성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따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성(聖)과 속(俗)을 넘나든 자유인이며 무애(無?) 실천자로서,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그러고 보니 제석사가 첩첩산중이 아닌 마을 가운데 지어진 게 당연해 보인다. 사라사로 창건되어 세월의 풍파를 겪은 제석사의 구석구석을 관심과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니, 마치 원효성사가 이 땅에 꽃피운, 찬란했던 불교의 옛 자취를 보는 듯하다.
<글 / 천윤자 수필가>
<사진 / 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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