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양 재 완
최근 노래 ‘아모르 파티’가 유행이다. 가수 K가 부른 ‘아모르 파티’는 요즘 가장 유행하는 노래이자, 내가 노래방에서 부를 양으로 마음먹고 배우는 곡이다. 라틴어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철학적인 가사와 라틴풍의 신나는 리듬이 마음에 들어 듣자마자 나의 노래로 점찍었다.
사회초년생일 때는 노래를 부르며 놀아본 일이 없었다. 기껏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백아가씨’나 ‘총각선생님’을 속으로 웅얼거리며 따라 불렀을 정도였다,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지내다가 장가가던 날, 처가에서 신랑을 다루기 위해 온 취객들에게 발바닥에 몽둥이찜질을 안 당하려고 부른 ‘추풍령’은 내가 가장 잘 부를 수 있었던 노래였다. 그 노래는 시골에서 혼자 무남독녀를 키우며 고생하신 장모님의 처지와 닮아서, 그 후에도 기회만 되면 곧잘 부르곤 했다.
모르는 노래라도 많이 듣다 보면, 노래에 담긴 삶의 희로애락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귀를 기울이며 흥얼거리다 보면 자연히 소리 내어 부르게 되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삶을 곱씹게 된다. 나는 노래를 체면치레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만 부른다. 처음에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흘러간 노래를 불렀으나, 점점 재미가 없어져, 되도록 남이 잘 부르지 않는 최근에 나온 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노래방에서 ‘신곡 아저씨’라는 소리도 간혹 듣는다.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를 자꾸 들어야 한다. 노래도 내 경험으로는 반복해서 자꾸 들어야 잘 할 수 있어, 마음에 드는 새로운 곡이 나오면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의 유튜브를 통해 계속 듣는다. 하루에 만 보 걷기를 목표로 강변길을 걸을 때도 스마트 폰의 리시버를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리듬이 내 몸에 밸 때까지 듣는다. 가사는 모니터의 자막을 보지 않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외운다.
내가 요즘 즐겨 부르는 ‘아모르 파티’는 가수 K가 일본에서 화려한 명성 뒤의 슬픈 결혼생활 끝에 이혼하고 귀국하여 부른 노래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노래를 작곡가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여 받은 곡이라고 한다. 노랫말을 통해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라 고백한다.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라며 과거를 지우고,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라고 슬픔을 슬픔으로 남기지 않고, 새 인생을 위한 의지를 담아 흥겹게 라틴풍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항간에 재혼 의사가 풍문으로 떠도는 것은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로 대답하는 것 같다.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라며 확고한 자신의 결의를 낸다. ‘아모르 파티’는 고통과 상실을 포함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와 운명에 체념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야간에 다녔다. 연세가 많으신 아버지가 이끄는 살림살이는 넉넉하질 못하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취직하였다. 상업고등학교 신입생 중 성적 우수자를 공개 채용한다는 재벌그룹의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낮에는 연구실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공부를 하였다. 선생님도 내 처지를 알고 졸고 있는 나를 보고도 꾸짖지 않았다. 공부를 끝내고 회사의 기숙사로 가는 길에는 수성교란 다리가 있었다. 밤중에 부는 겨울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다리 위를 지날 때는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일 년 정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司書)로 일하며 학비도 보탰다. 삼 년 동안 야간에 다닌 고등학교 생활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당연한 나의 삶으로 여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요즘은 철도 없이 살지만, 그 당시에는 철이 조금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 시절에 ‘아모르 파티’란 노래가 있었더라면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라고 노래하며 찬 겨울의 다리를 건너다녔을 것이다.
‘아모르 파티’는 나에게 숙명처럼 다가온 노래다. 노래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나의 가슴에 와 닿은 것이다. 가수 개인의 지나온 이야기를 담은 노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이야기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를 흥얼거리며, 오늘도 소중한 하루를 힘차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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