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號)는 ‘무철’입니다
양 재 완
친구들 사이에 호를 지어 부르는 시점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름을 막 부르려니 어딘가 어색
함을 느낄 때 주로 관공서나 교직계통의 친구들이었으나 전혀 관계가 없는 나도 호기심으로
호를 생각하였다. 처음 떠오른 별칭은 ‘너머’였다. “산 넘어 ∼ ∼ ”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
면서 ‘넘어’를 ‘너머’로 고쳐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너머’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내 생각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시하고 지내자며, 한창 사용하다가, 어느 광고 매체에 같은 이름의 상호가 보여 사용을 안 하고 있으며, 인터넷 사이트 한 곳에선 변경 시 돈을 요구하기에 그냥 놔두었다.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내 블로그도 만들다 보니 ID와 별명이 필요했고,
‘너머’를 쓰기는 찜찜하던 차에, 마누라가 늘 하던 말 “당신은 왜 그리 철이 없능교?”라는 소리가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언제 철없는 행동을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으니 철이 없기는 없는 게
확실한 것 같다. 이규보 선생이나 신용호 선생은 호를 짓는데 3∼4가지 잣대를 둔다고 하지만,
나는 503개의 호를 가진 추사 김정희 선생처럼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것으로 지어도
괜찮겠다 싶어 ‘무철’이라 서슴없이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철없이 사는 것이 내 모습과 같다고
생각되고, 이제까지 철없이 살아도 남에게 큰 폐 끼치지 않고 잘 지내 왔다고. 생각되는데, 새삼
철들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되어 계속 사용 중이다.
사람들은 호를 묻고는 “한자(漢字)는?” 하고 묻지만, 나의 대답은 “없을 무(無) 그냥 철. 철없는
사람이 무슨 한자까지”라며 대답한다. 좋게 해석하는 사람은 무학대사까지 들먹이며 “더 들 철이
없어서”라고 어설픈 칭찬도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회원 수가 많은 사이트에 출입할 당시엔
호가 좋다며 “팔 수 없나?” 농담으로 던지는 댓글도 있었고, 호가 없던 친구는 나의 호를 도용하여
‘유(有)철’이니 ‘만(滿)철’이니 하며 똑똑한 자기를 내세우기도 했다. 한 번 등록된 이름은 다른
사람이 절대로 쓸 수 없도록 만든 인터넷 규칙은 참 잘 된 것이라 생각된다.
인터넷에 쓰이는 이름이 습관이 되어 호(號)로까지 사용하는 ‘무철’이란 내 별칭. 완전한 사람(있을 在, 완전 完)과 철없는 사람(무철)의 동행. 남이 처음 들으면 웃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별칭을 사랑하며, 영원히 철들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 철이 들면 반성할 일도 많을 것이고, 그 뒷설거지에 아까운 내 후반기를 허비하기는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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