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100년향수길은 남산, 종교, 인쇄골목을 만날 수 있는 코스로 2.12㎞ 길이에 1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
대구의 중심 반월당, 동화사의 말사인 보현사, 천주교순교사적지 관덕정순교기념관,
제일교회의 전신인 남성정교회에서 분립한 남산교회, 경상도관찰사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석을 보존하고
유학을 강학하는 장소였던 상덕사(문우관), 유럽풍 건축물 성유스티노신학교,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떠 만든 성모당,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의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등
이국적인 건축물과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 등 다양한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대구 중구청 홈페이지)
관덕정을 거쳐 잘 정비된 남산100년향수길을 걷다 보면 중세기 유럽의 거리를 걷는 착각에 빠진다
성유스티노신학교, 성모당,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의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건축물에 푹 빠지며 종교의 힘을 생각한다
반월당 - 보현사 - 관덕정 - 제일교회 - 성유스티노신학교 - 성모당
- 샬트로성바오로수녀원- 상덕사(문우관) - 김울산여사 기념상 - 반월당 (2시간)
반월당
무영당과 함께 한국인이 세운 백화점으로 지금 현재 백화점 건물은 사라지고 인근에 반월당이라는 지명만 남아 있다.
예전 반월당 건물은 현재 반월당역 22번 출구 인근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반월당은 2층 목조건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백화점이었다. 지금 반월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반월당이라는 이름은 반월당 네거리,
반월당역 등 인근의 지명을 지칭하는 말로 계속 사용되면서 여전히 대구와 함께하고 있다
보현사
보현사 - 동화사 말사
관덕정(순교기념관)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 사적지이다. 조선 시대 때 이곳에는 군관을 선발하던 연병장이 위치해 있었고
한쪽은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영조 때 관찰사 민백상이 무과 시험장인 도시청을 세우고
그 이름을 관덕당이라고 지었다. 이후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고 그 옆에 있는 연병장에서 경상도 지역에 살던
천주교인들이 많이 처형되었다. 조선후기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눈물이 스며있는 공간이다.
관덕정(순교기념관)
관덕정(순교기념관)
관덕정(순교기념관)
관덕정(순교기념관)
관덕정(순교기념관) - 돌 형구
남산교회
남산100년향수길
남산100년향수길
남산100년향수길
남산100년향수길
성유스티노 신학교
유럽풍의 백여 년의 전통을 가진 신학교, 프랑스 선교사 드망즈 주교가 신학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1911년에 추진하기 시작해서 1914년에 완공했다. 이 건축물은 서구의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혼합한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이 있는 건물이다. 건축사뿐만 아니라 천주교 역사에도 중요한 곳으로 이곳에서 공부한 많은 학생들이 신부가 되어 한국 가톨릭의 중추적 세력이 되었다.
이 학교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은 천주교의 큰 별 김수환 추기경으로 이곳에서 공부한 뒤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 김대건 신부 동상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천주교 대구 대교구청 - 서상돈 흉상
천주교 대구 대교구청 - 성직자 묘지
천주교 대구 대교구청 - 안익사
천주교 대구 대교구청 - 에밀 타켓 신부의 왕벗나무
성모당 - 대구 유형문화재 제29호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는 부임 직후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 주보로 선포하고, 성모님께서 주교관과 신학교를 건립하고
주교좌성당을 증축하도록 도와주시면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닮은 성모동굴을 지어 바치겠다는 허원을 드렸다.
그 세 가지 청이 모두 이루어짐에 따라 드망즈 주교는 허원한 대로 성모당을 건립하여 1918년 10월 13일에 축성하였다.
동굴 위쪽에는 허원한 연도인 1911과 그 허원을 채운 연도인 1918이 새겨져 있으며, 두 숫자 사이에 새겨진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는 ‘원죄 없으신 잉태께 바친 허원에 의하여’라는 뜻이다.
성모당
성모당
천주교 대구 대교구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동산에는 기독교 문화가 집결되어 있다면 이곳 남산에는 대구 가톨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은 1915년 드망즈 주교가 로베르 주교의 도움을 받아 지은 수녀원이다.
당시 노인과 고아를 돌볼 수녀가 필요해 프랑스에 있는 성바오로 수녀원에 파견을 청했고 파견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본국에서 온 수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건축은 로마네스크와 고딕풍에 따르는 양식으로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당시 이곳에 있던 수녀들은 고아들과 장애인을 돌보는 봉사를 했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남산천주교회
청국샘
청국샘은 지금의 남산3동 주민센터 인근에 살았던 청나라 시대의 벽돌기술자인 모서방이란 사람이 감나무밭이었던 곳에
샘을 팠다고 한다식수가 귀한 시절에 샘을 어찌나 깊게 팠던지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한다
남산100년향수길
남산동 인쇄골목
상덕사 (문우관)
상덕사 (문우관)
상덕사비각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이숙, 유척기의 선정을 기념하여 경상도 백성들이 건립한 상덕사의 비석을 보존하기 위한 집이다
문우관
이 학당은 한일합방 후 대구의 낙육재와 양사재가 폐허가 되어 선비가 들어가 의지할 장소가 없을 때
채헌식이 1914년 상덕각에서 선비들을 모아 강학하던 곳
김울산여사 육영 기념상 - 대구 동부교육청 내에 있음
◇김울산 1858년(철종 9)∼1944년. 육영사업가.
술장사(기생명 향이:香伊)로 돈을 모아 순도학교(順道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910년에는 서주원여사가 주도하고,고
종의 하사금과 지방유지의 기부금 및 자신의 재산으로 대구에 명신여학교(明信女學校)의 창립을 도왔다.
1925년 운영난에 빠진 명신학교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이듬해에 복명학교(復明學校)로 개칭,
건물을 신축한 뒤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자신의 이름도 복명(復明)으로 개명하였다.
그 뒤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희도국민학교(熙道國民學校)를 설립하였으며,
대남학교(大南學校) 부속유치원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단체에 기부금을 희사하였다.
그밖에 홍수·가뭄 등으로 인한 이재민구호에 앞장섰으며, 특히 1936년의 흉년에는 많은 구호사업을 전개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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