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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골목투어) - 2코스 / 근대문화골목

무철 양재완 2017. 3. 8. 09:57




근대문화골목은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길이다.

1.64㎞의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다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걸리며,

골목투어를 전국 유명 관광지로 만든 가장 인기 있는 핵심 코스이다.

동산 청라언덕, 선교사주택,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제일교회,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 두사충의 뽕나무 골목,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조선의 과거길 영남대로,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옛 대구의 번화가 종로,

화교소학교, 사투리로 길다를 질다로 표현된 진골목이 이어진다. (대구 중구청 홈페이지)


대구 중심가에 있는 우리나라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옛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는 코스로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것으로 보아 유명 관광코스임을 알 수 있었다 


동산의료원 선교사주택. 청라언덕 - 만세운동길 - 계산성당 - 뽕나무 골목 - 이상화,서상돈 고택.계산예가 -

제일교회 - 약령시 - 진골목 - 화교소학교 - 종로 (2시간) 

 




대구골목투어 2코스 /  근대문화골목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 - 대구 유형문화재 제24호

대구 최초의 여자 선교사인 스윗즈 선교사가 살았던 주택으로 현재 선교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대구 읍성돌을 주춧돌로 사용하였고 기와를 얹어 전통 한,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



선교사 챔니스 주택 (의료박물관) - 대구 유형문화재 제25호

챔니스 선교사의 주택이다

2층에는 동산의료원을 크게 발전시킨 마펫 가족의 생활공간이 그대로 있어 당시 선교사들의 검소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 (의료박물관)



선교사 챔니스 주택 (의료박물관)



선교사 챔니스 주택 (의료박물관)



선교사 챔니스 주택 (의료박물관)



선교사 블레어 주택 (교육,역사박물관) - 대구 유형문화재 제26호

블레어 선교사가 살았던 주택으로 교육, 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1층에는 조선시대 서당과 1960-70년대 초등학교 교실이 있으며 2층에는 대구 3.1운동 관련 사료 등이 있다


선교사 블레어 주택 (교육,역사박물관)



선교사 블레어 주택 (교육,역사박물관)



선교사 블레어 주택 (교육,역사박물관)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 종탑



청라언덕

청라언덕은 대구의 기독교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정착하고 지금의 동산의료원이 사회에 봉사하면서 성장한 중심지이다. 

대구가 낳은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의 로맨스를 담은 노래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곳이다. 노랫말에서처럼 바로 이곳이 푸른 담쟁이 넝쿨이 휘감고 있던 청라언덕이고

백합화는 그가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이라고 한다.


청라언덕



3.1 만세운동길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3월 8일 오후 대구에서도 일어났다.

제일교회 신관 왼편의 3․1운동 계단에서부터 동산박물관을 지나 이어진 길이다.

3․1운동 당시 대구의 학생들이 일본경찰을 피해 몰래 만세장소로 이동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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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길과 제일교회 신관



계산성당 - 사적 제290호 

계산성당은 1899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처음 지어졌지만 1901년에 화재로 전소되었고

1902년에 프와넬 신부에 의해 다시 설계되어 지금의 건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설계와 100여 년의 긴 전통 때문에 성당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딕 양식의 우뚝 솟은 쌍탑이 특징인 계산성당은 고풍스러운 내부와 건축물의 아름다움 덕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성당 내부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새겨져 있는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했던 우리나라 성인을 의미한다. 


계산성당



계산성당



계산성당



계산성당



계산성당



계산성당과 제일교회 신관



뽕나무 골목 (두사충)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온 명나라 장군 두사충의 이야기가 있는 골목이다.

두사충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여 임금에게 대구의 땅을 하사받게 되는데,

나중에 그곳에 경상감영이 들어서자 그 땅을 내어놓고 이곳 계산동 일대에 자리잡고 살았다.

그는 이곳에 뽕나무를 심어 생업을 이어나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일대는 뽕나무 골목으로 불리며 두사충에 관련된 설화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이상화 고택

항일시인 이상화 선생이 1939년부터 1943년에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최근 개발로 허물어질 뻔했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철거를 면하고 상화와 그의 문학을 기념하는 장소로 남게 되었다.

고택 안에는 상화의 작품세계와 생애가 정리되어 있어 상화와 상화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상화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시와 함께 고택 곳곳에 선생의 흔적과 역사가 남아있다.

이상화 고택



이상화 고택



이상화 고택



계산예가



계산예가

대지면적 313.9㎡, 연면적 126.14㎡ 규모의 근대 체험 전시관으로 이상화, 서상돈 고택 옆쪽에 위치해 있으며

근대 문화에 대한 영상물들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상돈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 회복을 꿈꿨던 민족 운동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

구한말 시대의 장사꾼으로, 청렴한 선비로, 교육가로 산 서상돈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서상돈 고택



(구) 제일교회 - 대구 유형문화재 제30호

제일교회는 1893년에 대구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 예배당을 모태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와집을 구입해서 예배를 드리다가 성도가 점차 많아지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1908년에 단층 교회를 신축하게 되었고 이후 1936년 종탑을 세우며 현재의 교회 모습이 완성됐다.

건물 전체에 근대의 고딕양식이 잘 나타나 있어 근대 건축물 연구에도 큰 자료가 된다. (현. 제일교회 선교관)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약령시

300년의 역사를 가진 대구약령시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한방문화의 요람이다

약령시엔 한의약박물관과 한의원. 한약 관계 점포 등이 밀집해 있고 제일교회 등 대구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공간이다


진골목



진골목 - 석재 서병오 생가터



진골목

진골목은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 ‘질다’에서 기원하였다.

조선시대 때부터 존재한 진골목은 그 시절 내로라하는 대구의 유지들이 많이 살았다.

현재 이 골목의 길이는 100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골목이 여전히 진골목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이 골목이 담고 있는 시간들이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고 그 시간을 느끼며 걷는다면 절대 금방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골목 - 정소아과의원

1937년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대구 갑부 서병직의 저택이었는데

1947년 정필수 원장이 매입해 정소아과 건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정소아과는 한국전쟁 전후의 대구를 담은 소설

 ‘마당깊은 집’에도 등장할 정도로 대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던 병원이었다


화교협회 (화교소학교)



화교협회 - 근대 건축물 등록문화재 제252호

종로에는 화교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 화교는 근대에 들어 이곳 종로에서 포목업, 건축업, 요식업 등을 하며

경제적으로 정착했고 학교를 세우고 협회를 창설하며 이곳에 화교 사회를 만들었다.

원래 1929년에 지어진 대구 갑부 서병국의 저택을 화교협회에서 매입하여 현재까지 협회건물로 쓰고 있고

부지 내에 화교 소학교도 들어서 있다. 현 화교협회 건물은 80년이 넘었지만 보존상태가 좋아

문화재적 가치가 크며 근대 건축물 등록문화재 제252호로 등록되어 있다.


화교소학교



종로

종로는 종각이 있는 길이라는 뜻으로 서울, 수원 등지에도 동일한 지명이 존재한다.

조선시대 이래 대구 중심지의 도로로 예전에는 경상감영과 대구 읍성의 남문인 영남제일관이 있었다.

대구의 종로는 부자 동네였던 진골목과 남성로 약전골목 인근에 위치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중요한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