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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행) - 진주성

무철 양재완 2014. 2. 28. 12:23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金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

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다.

 

 

 

 

촉석문 

 

 촉석문

 

촉석루

 

 의기사

(조선 선조 26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논개의 넋을기리기 위햐여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의기사

 

 의암

 

  의암

(임진왜란 때 논개가 순국한 바위.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이라 불리기도 했다)

 

 의암사적비

 

쌍충비 

(임진왜란 때 크게 전공을 세운 제말장군과 제흥록 장군의 충의를 기리기 위한 비석)

 

진주성

 

 진주성

 

진주성 

 

 진주성

 

 진주성

 

 서장대

(진주성 서문의 지휘소이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회룡루로 나오며 1934년 독지가 서상필씨가 중건했음)

 

 서장대

 

 호국사

(고려 말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승병을 양성코져 세웠음.처음엔 내성사였으나

진주성 싸움 때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숙종이 호국사라 이름을 내렸음)

 

  호국사

 

 창렬사

 

 창렬사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분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

충무공 김시민,김천일,황진,최경희등 39위의 신위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포루 

(진주성을 방어하던 포진지)

 

 

포루  

 

북장대 

(진주성의 북쪽 지휘소로 진남루라고도 부른다)

 

 북장대

 

 북장대에서 본 진주시가지

 

북장대에서 본 성곽 

 

청계서원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정신열 선생과 목화씨를 처음 심어 성공시킨 정천익 선생을 모신 곳)

 

진주성 비석군 

 

 

청계서원

 

 하마비

 

 국립진주박물관

(1984년 개관하였으며 1998년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하여 임진왜란 관련 유물 800여점 전시하고 있음)

 

  국립진주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야외

 

  국립진주박물관 실내

 

 영남포정사

(망미루라고도 불리며 진주성에 현존하는 최고의 건물로 경상남도 관찰사 감영의 정문이었다)

 

  영남포정사

 

 진주성

 

김시민장군 동상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호구충절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한 진주성 수호상)

 

 공북문

(진주성도에 나와 있는 진주성의 정문으로

 "공"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올려 공경한다는 뜻이며 "북"은 임금이 계시는 북두를 뜻하는 것임)

 

김시민장군 전공비(좌)와 촉석정충단비(우)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진주대첩을 기념하고 계사년에 순국한 민,관,군의 충혼을 위령하기 위하여 건립)

 

 임진대첩계사순의단

 

호국의 종

(진주성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범종으로 이은상 시인의 명문이 새겨져 있음)

 

진주성의 봄 소식

 

진주성의 봄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