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2009년 길의 최고 화두다. 올레는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말한다. 제주도가 올해 '올레길'을 히트시키면서 길에 '느리게 걷는 여행'이라는 색깔을 다시 입혔다. 대구에서도 '올레길'이 등장했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직접 발로 뛰어 5개 코스의 '팔공산 올레길'를 내놓은 것. '북지장사 가는 길', '한길골 가는 길', '부인사 도보길', '평광동네길', '거북바위마을(구암마을) 가는 길' 등이다.
2010년에는 팔공산 올레지기가 되어보면 어떨까. 팔공산 올레길에서 느린 걸음을 통해 지나쳐 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되새길 수 있고, 지역 주민과 작은 만남도 가지자.
◆북지장사 가는 길
팔공산 백안삼거리에서 동화사 쪽으로 1km 남짓 가다 우측 방짜유기박물관 가는 길이 그 시작이다. 시작부터 시인의 길이 길손을 맞이한다. 길 가장자리에 일렬로 늘어선 돌에는 김춘수, 윤동주, 천상병 등 익히 아는 시인의 시가 아로새겨져 있다. 시인의 길 가운데 위치한 돌집마당은 쉬어가는 자리다. '안 오신 듯 다녀가소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사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가지 말라'는 문구가 독특하다. 가는 길에 자리한 방짜유기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 이봉주 선생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관람료가 무료라 무담이 없다.
북지장사 3.2km 안내판을 지나 걷다보면 소나무 숲이 길 옆으로 나란히 서 있다. 바람이 불면 솔잎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파도소리처럼 들리고, 솔내음은 가슴속을 시원하게 한다. 소나무 숲은 북지장사 가는 길의 '포토존'이다. 햇살이 은은한 아침이나 저녁이면 숲과 하늘이 어우려져 작품 수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길의 끝은 북지장사. 고려 때 규모가 커 한때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렸다는 말이 전해진다. 지금은 절의 규모가 적지만 잠시 쉬어가기에는 적격.
왕복 2시간 거리며 남녀노소 모두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팔공산 올레길은 자동차를 가져가면 재미가 반감된다. 버스를 타도 교통 불편이 별로 없다. 급행 1번 버스를 타고 방짜유기박물관에 내리면 된다.
◆한실골 가는 길
지묘동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한실골, 용진마을을 거쳐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에 이르는 길이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 일대 왕산은 그 옛날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열한 싸움(공산전투)을 벌인 곳이다. 신숭겸 장군이 수세에 몰린 왕건을 구하고자 왕의 옷을 입고 싸우다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공부에 빠져 길을 가다보면 한실골에 접어든다. 한실골은 대구 동구청이 산주의 동의를 얻어 정비한 임도다. 봄·여름엔 녹음을,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이다. 길의 초입과 중간쯤에 쉼터도 2곳이 있다. 두 번째 쉼터는 언덕이다. 두 번째 쉼터까지는 오르막길로, 길 양옆에 소나무 숲이 운치를 더 한다.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솔잎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언덕에 오르면 한실골의 백미가 눈앞에 펼쳐진다. 팔공산의 정상인 비로봉(제왕봉)이 정면을 가득 채우고, 좌우로는 동봉과 서봉이 길손들을 반긴다. 두 팔을 크게 벌린 뒤 시원한 산내음을 가슴에 가득 담는 장소랄까.
언덕을 지나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오솔길이 나오고, 이내 정겨운 시골마을을 연상케하는 용진마을이다. 마을 구경을 하면 어느덧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에 닿는다. 포토존은 두 번째 쉼터가는 길과 그 언덕의 팔공산 전경이 아닐까. 편도코스로 3시간 정도 걷는다.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이 걷기에 좋다. 101번을 타면 지묘동에 하차하고, 101-1번을 타면 파계교에서 하차한다.
◆부인사 도보길
백안삼거리를 지나 공산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미곡마을, 용수동 당산, 수태골, 팔공산 순환도로의 낙엽거리를 지나 부인사와 파계사 시설지구에 이르는 길이다.
편도코스로 3~4시간이 걸린다. 미곡마을에서 수태골까지는 오르막이어서 한 여름에 걷기에는 다소 힘에 부친다. 급행 1번 버스를 타고 공산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한다. 미곡마을의 용수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용수동 당산이 보인다. 마을을 개척한 배씨와 구씨가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 제사를 지낸 곳이다. 당나무와 제사를 지낸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선지 지금도 영험이 있다고 해 치성을 드리는 아낙네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개울 수준의 용수천을 따라 오름길이 끝나는 지점이 수태골이다. 팔공산 최고의 피서지이자 잠시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수태골 앞 팔공산순환도로에는 대구시가 지정한 낙엽거리가 있어 늦가을의 운치를 만들어낸다. 수태골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30여분 걸으면 길 옆에 부인사가 나타난다. 부인사는 신라 때에 세워진 절로 선덕여왕을 기리는 숭모전이 있는 곳이자 팔만대장경보다 200년 앞서 제작된 초조대장경이 봉안된 절이기도 하다. 부인사는 한때 2천여명의 스님과 39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가람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승시(승려끼리만 거래하던 시장)가 열렸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부인사 도보길의 포토존은 낙엽거리와 용수동 당산.
◆평광동네길
'산을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는 길', '이런 곳에 마을이 있었나?' 등의 의심은 산모롱이를 돌면 갑자기 해갈된다. 시야가 트이면서 아담한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단양 우씨 집성촌이자 대구 사과의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동구 도동을 지나 평광동 종점에서 길을 시작한다. 길 시작과 함께 마당 중앙에는 위풍당당한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1945년 광복을 기념해 심은 '광복소나무'다. 광복소나무 뒤편의 단양 우씨 재실인 첨백당에서 마을의 역사를 담을 수 있다. 다시 길을 재촉하다보면 '재바우농원'에선 우리나라 최고령 홍옥사과나무가 반긴다. 올해 나이가 80살이면서도 왕성한 생산량을 자랑한다. 늦가을인 11월쯤 마을에 오면 대구 사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순환코스로 발품 시간은 2~3시간. 포토존은 다산과 장수의 상징인 홍옥사과나무.
◆거북바위마을 가는 길
401번 버스를 타고 내동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시작한다. 내동 보호수→추원재→성재서당→미대동 들녘→구암마을로 돌아오는 3~4시간 코스다.
비교적 완만한 길이며 눈길 닿는 곳곳엔 팔공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내동마을길엔 어마어마하면서도 신령스러운듯한 나무가 시선을 끈다. 500년된 노목이다. 발길을 돌려 농로를 지나면 야트막한 산이 나타나고, 산의 오솔길을 걷으면 추원재와 성재서당이 나타난다. 마을의 문화유산들이다. 잠시 역사공부를 하고 나면 논이 훤하게 펼쳐진다. 가을 황금들녘에서 금빛 파도를 볼 수 있는 곳. 미대동을 지나 도로 건너 편에 자리한 마을은 구암마을. 마을 옆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귀암(龜岩)으로 불리다가 세월이 흘러 지금은 구암(九岩)이다. 평광동네길처럼 편안하게 마을의 풍성함과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포토존은 황금들녘과 내동 보호수.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