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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

무철 양재완 2010. 5. 20. 10:45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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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들에게 ‘차 조심’을 당부한다. 그런다고 혼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 부모 마음이라는 게. 주변의 친구들도 이제는 하나, 둘 보기 어렵다. “이사 갔냐고?” 이사 같지, 하늘 나라로. 얼마 전에 봤던 신문에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2008년 현재 80.1세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제 나도 ‘그 때’를 준비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아무 것도 없이 입적한 법정 스님을 생각했다. 이제 갓 70을 넘기면서 그나마 무탈하게 지나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문제는 수입은 전무한데 여전히 생활비가 필요하고 씀씀이가 줄어들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더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손들이 조금씩 보태주는 용돈으로 충당하고는 있는데 몇 해전 수술한 이후 약 값과 정기적인 진료에 보태기에도 빠듯 하다. 그렇다고 생활비가 좀 더 필요하다는 말을 자손들에게 하기에는 염치가 없는 터라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아들네가 손주들 데리고 왔을 때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함께 본 TV에서 ‘주택연금’관련 내용이 소개될 때 “생활비도 넉넉하게 못 챙겨드리는데 더 늦기 전에 눈치보지 마시고 저렇게라도 해보시라”는 얘기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누구 좋으라고 그 나마 이 것 하나 있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손 벌리지 않는 게 오히려 자손들 도와 주는 것이겠구나 싶다.

요즘 경제 여건이 어려운 탓인지 역모기지(reverse mortgage)라는 ‘주택연금’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주택연금은 부부 모두 60세 이상인 고령자가 소유한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금융회사에서 노후생활자금을 연금방식으로 대출받는 제도다. 시가 9억 원 이하인 1가구 1주택 보유자가 대상으로 근린주택이나 상가, 오피스텔은 제외된다. 연금은 대출자의 연령과 집값 등에 의해 결정되며 연령이 높고 집값이 비쌀수록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주택연금을 신청하면 자손들이 보태주는 생활비 보다 여유가 생기는 편이니 오히려 말년에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풍족한 생활도 가능(?)할 듯 하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갑자기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을 두고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고 하는 모양인데 몇 가지 적고 보니 이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엔도르핀이 생기는 듯 하다.

첫째, 조그만 중고차라도 하나 살 생각이다. 몇 해전 차 쓸 일이 뭐 있겠나 싶어 차를 바꾸려는 막내에게 줬는데 정작 아쉽던 터다. 못 가본 곳을 중심으로 그야말로 ‘슬로우 여행’을 다녀 볼 생각이다. 물론 여행지에서의 ‘맛 집’ 순례를 위해 이제서야 감 잡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음식적 리스트를 따로 준비할 생각이다.

둘째, 조심 조심 운전해서 여행지로 향하기 전에 애들 집에나 들러 손주들에게 용돈이나 맘 편하게 줬으면 싶다. 지금도 가끔씩 찔러주는 1~2만원 때문에 애들 버릇 나빠 진다는 구박을 듣지만, ‘뭔 상관’ .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는 ‘종심(從心)’의 단계가 아닌가? 내가 곧 마음이다. 돈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중학교 졸업한 큰 손주에게 5만원 정도 줄 생각이다. 셋째, 6.25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 나와서 신세 졌던 몇 분들에게 고마운 감사의 식사라도 나누고 싶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고맙고 그립다. 넷째, 몇 해전에 막내 딸이 사준 ‘똑딱이(사진기)’를 요즘 나오는 것으로 바꿀 생각이다. 화면도 크고 메모리 용량도 큰 것으로 바꿔 여행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려 ‘여행 일기’를 써볼 생각이다. 산행을 즐기는 옆 아파트의 ‘김씨’한테 배워 개인 블로그도 가져 보고 싶다. 칠십 나이에 블로거가 되어 온라인 세상에서 젊은이들과 공감하고 싶다. 아니 ‘존재의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 나이 어린 인생 후배들에게 ‘니 들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과정을 이야기 해주고 싶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아니 많다. 그러자니 현실적으로 ‘총알’이 필요하다. 있으면 좋은 게 아니고 없으면 불편하다. 아니 요긴하다. 그것을 남에게 꾸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택연금은 꼭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인생은 길고 쓸 돈은 없다. 정확히는 쓸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융통해야 하는지 판단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듯 하다. 마음 속으로는 결정했는데, 그리고 나름 계획도 만들어 놨는데. 그런데 이 얘기를 언제 꺼내야 하나?


출처 :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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