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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관과 하동나림생태공원 - 이병주 선생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보다

무철 양재완 2026. 4. 5. 20:46

 

이병주문학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낡은 만년필과 빼곡한 친필 원고지들이다. 하루에 원고지 백 매를 써 내려갔다는 그 전설적인 집필속도를 증명하듯 쌓여있는 원고 뭉치에서는 여전히 잉크 향과 고뇌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선생의 일갈은 셔터를 눌러 찰나를 기록하는 일 또한 역사의 한 조각을 빚는 행위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정적인 전시실을 돌아 나오며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면 그가 문장으로 세웠던 산맥들이 눈앞의 실경과 겹쳐지며 묘한 울림을 남긴다. 선생의 호를 딴 나림생태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학관의 내부가 치열했던 집필실의 연장선이라면 공원은 선생의 문장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휴식하는 너른 품과 같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세워진 시비들이 불쑥 인사를 건네는데 그 구절들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꽃과 나무들 사이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벤치에 잠시 앉아 쉬노라면 태양에 바래 역사로 남은 그의 삶과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된 그의 문학이 이 평화로운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