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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적 제499호)

무철 양재완 2026. 4. 2. 20:35

 

사적 제499호. 조선 명종7년(1552)년에 개암 강익(姜翼)이 문헌공 정여창(鄭汝昌)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남계서원이라 칭하였는데 서원으로서는 백운동서원(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 사액된 서원으로 명종21년(1566)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숙종3년(1677)에 문간공 정온(鄭蘊)을 배향하고 숙종 15년(1689)에 강익을 배향하였다. 또, 별사(別祠)에 뇌계 유호인(兪好仁)과 송난 정홍서(鄭弘緖)를 배향하였다가 고종 5년(1868)에 별사를 훼철하였다. 2019년 7월 6일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함양 남계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최종 등재 하였다.

 

문우들과 함께 남계서원에 들어섰다.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았었으나 오히려 그 흐릿한 풍경이 고색창연한 서원의 멋을 더욱 깊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화려한 봄꽃의 향연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고, 서원 곳곳을 지키는 배롱나무조차 잎 하나 틔우지 못한 채 매끄러운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비어있는 풍경 덕분에 우리는 서원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풍영루를 지나 서원 내부로 들어서니 정갈하게 닦인 마당과 단단한 기와지붕이 우리를 맞이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꼿꼿한 절개가 서까래마다 깃들어 있는 듯 공기는 차분했고 정적은 깊었다. 문우들과 함께 걷는 발소리가 서원의 고요를 깨울까 조심스러웠지만 그 정적 속에서 나누는 문학적 담소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꽃이나 노을 같은 극적인 풍경은 없었지만, 흐린 날씨 덕분에 나뭇결 하나 기와 한 장의 질감이 더욱 오롯이 살아났다. 화려한 수식어에 가려졌던 진실한 문장을 찾는 작가의 눈처럼, 우리 역시 남계서원에서 겉치레 없는 삶의 단면을 보았다. 사당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누군가는 시상을 가다듬고 누군가는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기도 했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서원을 에둘러 흐르는 남계천의 물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리는 듯했다.

 

 

 

 

 

 

 

 

 

 

 

 

 

풍영루

 

남계서원

 

남계서원 (명성당)

 

묘정비 (비각 안에 정여창 선생 등을 기리는 묘정비가 있다) 

 

양정제애련헌

 

경판고

 

 

 

사당

 

전사청

 

 

 

사당에서 본 명성당 뒷편과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