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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여행) - 남해 충렬사

무철 양재완 2017. 12. 16. 18:33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사적 제 233호).






충렬사 외삼문이 보인다



외삼문

 외삼문의 충렬사 편액은 추당 박호병(秋堂 朴好秉 1878-1942)이 씀


내삼문

내삼문의 충렬사 편액은 박정희 대통령이 씀


충렬사






충렬사 사당

사당의 충렬사 편액은 현종의 어필이라 전함


충렬사 사당 - 충무공 위패와 영정

"영정" 은 1953년 "월전 장우성 화백" 이 그린 충무공의 초상화이고, 1973년에 정부에서 "표준영정" 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충민공비

충렬사 건립은 충무공의 순국을 슬프게 느낀 남해사람 김여빈과 고승후가 충무공 사당 건립을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1633년(인조 10)에 한 칸짜리 초가 사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처음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충렬사의 시작이다. 남해현령 이정건은 이 사당 앞에 충민공비(忠愍公碑)를 세웠고,

조정에서는 1643년에 이순신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가묘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락사에 최초로 안치되었다가 그해 이곳 남해 충렬사로 이장, 안치되었다.

시신을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에 3개월간 이곳 가묘자리에 안치했다.

1599년 2월 11일 유해가 충렬사에서 군영지인 전라도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비각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내삼문에 충렬사(忠烈祠)와 비각에 보천욕일(補天浴日)이라는 액자를 걸었다.

보천욕일은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은 큰 공덕’이란 뜻을 담고 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 기념식수한 나무가 뒤에 크게 자라있다



청해루와 한글 비(碑)

 1949년 정인보가 짓고 김충현이 쓴 충렬사 한글비의 비명은

“로량바다는 리충무공 전사하신 데라 여긔에 충렬사를 세우니라”라고 되어 있다.


남해대교



남해대교



거북선



거북선



거북선



거북선



거북선



거북선에서 본 남해대교



남해대교

길이 660m, 폭 9.5m, 높이 52m. 국도 19호선상에 있으며, 맬다리 또는 허궁다리라고도 부른다.

1968년 착공하여 1973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현수교이다. 상부구조는 현수교로 된 3경간 연륙교이며,

하부구조는 구주식으로 되어 있다. 교각 밑으로 노량수도가 흘러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빨라 다리를 놓기에 상당히 힘들었으나, 양쪽 언덕에 강철선 묶음을 단단히 하고 거기에 다리를 매다는 공법으로 시공했다.

다리 양쪽 끝에 버팀목을 세우고 중간중간에 교각을 넣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관음포 앞바다 (노량진 해전 마지막 격전지)

이충무공은 1598년 음력 11월 19일 왜선 200척을 격침한 노량진 해전에서 왜적의 흉탄을 맞고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