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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육육봉 어우러진 한 떨기 바위꽃
작지만 가팔라 화끈한 산행, 하늘다리와 축융봉은 조망 명소
입석~김생굴~자소봉~하늘다리~청량사 4시간 소요
봉화가 요즘 뜨고 있다. 웰빙 바람을 타고 매년 열리는 9월의 송이축제와 8월의 은어축제에 관광인파가 몰리고 있다. 올해 초에 상영해 많은 관객이 관람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실제 촬영지로 인기이며, 청량산 하늘다리를 찾는 관광객으로도 인기다. 10년 전만 해도 봉화 하면 교통이 불편해 육지 속의 오지로 불렸지만 지금은 중앙고속도로와 영주·봉화 간 4차선 도로 덕택에 교통의 불편이 해소되었다.
청량산은 산 자체가 한 떨기 바위꽃이다. 암봉인 ‘육육봉’은 곧 12봉우리가 오밀조밀하고 대칭적으로 솟아 밀도 높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최고봉인 의상봉은 870m이며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총 면적은 48.76㎢로, 암봉이 밀집한 육육봉 일대는 전체 면적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확연히 높지도 넓지도 않은 산이지만 예로부터 많은 문인이 청량산의 밀도 높은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신라 명필 김생을 비롯해 최치원, 이황, 주세붕 등이 청량산의 빼어남을 극찬했다. 특히 퇴계 이황은 스스로 ‘청량산인’ 이라 호를 짓고 청량산을 자주 찾았다. 퇴계는 “이 산은 실제로 내 집안의 산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형을 따라 괴나리봇짐을 메고 이 산을 왕래하며 독서했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주세붕의 <유청량산록> 발문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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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융봉 전망바위에서 본 청량산. 울퉁불퉁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솟았다.팔봉산 3봉 정상. 3봉은 쌍봉 낙타처럼 2개의 암봉으로 되어있다.
청량산에 입산하려면 강을 지나야 한다. 낙동강인데 이곳에서는 ‘이나리강’이라고도 부른다. ‘두이’에 ‘내’의 고어 ‘나리’를 합친 사투리로 두 개의 내가 만나는 강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두 개의 강은 낙동강과 춘양에서 내려오는 운곡천이다. 청량교 건너편의 바위 산세가 화려해 강을 경계로 서로 다른 세상으로 나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청량산의 대표적인 산행 들머리인 입석은 여기서도 차로 10분 이상 들어가야 한다. 청량계곡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청량산, 오른쪽은 축융봉(845m)이다. 축융봉은 비슷한 덩치지만 육산 형세라 청량산에 비해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축융봉의 조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입석을 지나 축융봉 들머리인 산성입구에서 산으로 든다. 오후 4시를 넘은 시간이지만 짧은 코스와 건강한 다리를 믿고 산에 오른다. 임도를 따라 얼마쯤 걷자 산성이 불끈 솟은 게 보인다. 풀에 덮여 있어 길이 없는 듯 보이지만 겨울에 와 본 기억을 되살려 풀을 헤치고 들어가 산성 위에 올라 네모 반듯한 바위들을 디디며 오른다. 능선을 경계로 쌓은 산성을 타고 산에 오르는 것이다. 능선길만 해도 빠른데 반듯한 바위들을 깔아 놓았으니 오름길은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중간 조망터인 밀성대에서 맞은편의 청량산을 바라본다. 아직 고도가 낮아 산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지 않지만 기암괴봉이 녹음에 둘러싸인 모습은 확실히 장관이다. 저 아래 입석 근처의 사람들이 하는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골의 소리가 울린다. 냅다 고함을 지르면 골짜기 안에서 시끄럽게 울려 수많은 등산인파가 시끄럽다고 항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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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자소봉 정상. 자소봉은 커다란 암봉이며 표지석이 있는 곳은 철계단이 있는 중간 테라스 지점이다. (아래)김생굴. 신라의 김생이 이곳에서 10년간 서예를 공부한 뒤 명필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 나무 데크 계단도 있고 등산로는 아주 깔끔하다. 그러나 맞은편 청량산에 비해 축융봉을 찾는 산객은 거의 없다. 청량의 등산인파를 피해 한가한 여유로움을 즐기며 숲이 내주는 피톤치드를 독식한다. 산성을 따라 한 시간, 바싹 솟은 능선을 따라 땀 뻘뻘 흘리며 오르자 정상이다. 오를 때는 육산이었지만 정상은 암릉이라 사방으로 확 트였다.
표지석과 망원경이 수고했다고 도닥거린다. 아쉽게도 구름이 짙어 청량산이 흐릿하다. 바람이 흉흉하게 불고 여린 빗방울도 흩날린다. 희미하지만 축융봉에서 본 청량산은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한다. 암봉이 어찌 저리 조화롭게 피어오를 수 있는지 실로 한 송이 바위꽃임을 청량산 밖에서 실감한다.
늦은 시간에 날씨까지 나빠 왔던 길로 제 빨리 내려가 하산한다. 청량산 기인이라 불리는 청량산 ‘산꾼의 집’ 이대실씨에게 하룻밤 신세를 진다. 청량산 생활이 20여 년 된 그는 등산인들에게 무료로 약차를 내어주고 있다. 달마도를 그리며, 조각 작품이나 도자기를 만들고, 대금, 가야금, 검도 등 다방면으로 즐기고 사는 그는 청량산만큼이나 기이한 산꾼이다.
아침, 비만 오지 않으면 다행이라 예상했는데 싱그러운 파란 하늘이 방긋 웃는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웃음처럼 티 없이 맑다. 이토록 맑은 하늘 아래에서 산을 탈 때면 사춘기 소년처럼 마음이 설렌다. 먼저 어풍대로 간다. 청량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어풍대는 좁지만 조망을 보고 튀어나오는 감탄사가 적지 않다. 참 밝고 반듯한 절의 모습. 바위 봉우리 아래 자리 잡은 것이 너무도 잘 어울려 산의 일부처럼 보인다. - 축제 따라 가는 산행] 봉화 송이축제 &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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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마신 후 총명해졌다는 총명수는 바위 속에 물이 고여 있는 모양새다. 물이 고여 있어 수질이 좋아 보이진 않고 바가지도 없어 마시지는 않았다. 절벽 아래 테라스에 자리 잡은 응진전에 들렀으나 둘러볼 만한 것도 없고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따가워 이내 그늘진 산길로 쏙 숨어 버렸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오르면 김생굴이다.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수학했던 곳이라 전한다. 다가가노라면 우선 반원형의 큰 굴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굴이 또 하나 있는데, 위쪽에 야트막한 돌담을 쌓아둔 곳이 김생의 수도처라고 전한다. 이 좁고 궁벽한 곳에서 무려 10년간 서도에 정진했다는 김생은 왕희지에 필적할 만한 천하명필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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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난해 새로 만든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고 있으며 해발고도 800m 지점에 위치한 90m 길이의 국내 최대 구름다리다. 2. 국내 최대 규모의 구름다리인 하늘다리. 3. 하늘다리에서 본, 감탄을 자아내는 암봉.
한동안 오름길에 몸을 던져 잡스런 머릿속을 백지로 씻어낸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땀으로 오른 경지는 자소봉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중용의 경지다. 암봉 중간의 너른 테라스가 등산인들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표지석과 망원경이 쉬었다 가라 한다. 암봉 중간이라 남쪽 풍경은 바위에 가려 반만 보인다. 그래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산 전경은 은은한 맛이 있다.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향해 간다. 곳곳에 기암들이 솟아 있어 왼쪽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탁필봉은 뾰족하게 솟은 탓에 우회 등산로에 정상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하긴 표지석이 없다면 앞만 보고 가는 탓에 탁필봉 곁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연적봉은 철계단이 있어 오를 수 있다. 나무가 있지만 사이로 보이는 전망이 시원하다.
청량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뒤실고개부터는 거의 시장통이다. 샌들이랑 운동화 신은 관광객들이 왁자지껄이다. 산에 등산복을 입은 이들이 평상복 입은 이들보다 훨씬 더 적을 정도니 하늘다리가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인기인지 알 만하다. 하늘다리는 봉화군이 21억 원의 예산을 들여 1년여의 공사 끝에 지난해 5월에 완공한 구름다리이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는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90m 길이로 국내 산에 설치된 구름다리 중 최대 규모다. 그러나 워낙 튼튼하게 만든 탓에 출렁거림이 덜해 공포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다리 중간에는 1m 크기의 밑바닥을 강화 유리로 해놔 발아래를 보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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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탁필봉 옆을 지난다. 거칠게 솟은 암봉이므로 표지석이 봉 아래 등산로에 있다. (우) 어풍대에서 본 청량사. 주변의 기암과 잘 어울리는 깔끔한 절이다.
연두색으로 깔끔하게 칠한 것이 한눈에 봐도 걷고 싶은 생각이 들게 잘 만들어졌다. 다만 자세히 보면 두 암봉을 연결한 다리이기에 바위를 깎고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매력적인 청량산의 암봉을 깎아 만든 다리이니 산꾼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왜 케이블카를 안 만들어서 이렇게 힘들게 올라오게 하냐”며 “가는 길에 봉화군청에 항의해야겠다”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놓는다. 산에선 산길을 걷는 게 당연한 것이거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산정을 ‘날로 먹으려 드는’ 사고방식이 아쉽다.
하늘다리 한가운데서는 물론 조망이 좋다. 맞은편의 축융봉은 평범한 육산의 산세로 수더분하게 서 있다. 저 수더분한 산에서 본 청량산의 풍경이 얼마나 화려한지 여기 있는 인파는 모를 게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축융봉에 올라 청량산을 즐겨 보길 권한다.
의상봉은 나무로 둘러싸인 헬기장이다. 서쪽으로 5분 정도 가자 절벽 위의 낙동강 전망대가 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흘러가는 이나리강이 살아 있는 듯 생기 있다. 래프팅을 즐기는 고무보트들이 작게 보인다. 땀에 흠뻑 젖은 등산복이 축축해 마음 같아선 하산을 생략하고 바로 강에 풍덩 뛰어들고프다.
관광인파 속에 묻혀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바로 내려선다. 돌계단이 끝도 없이 나온다. 이래서 관광객들이 그토록 투덜거렸구나 싶다. 깔끔하게 정돈된 청량사는 탑에서 본 풍경이 운치 있다. 절 오른편으로는 암봉이 거칠게 솟아 산사의 운치를 더한다.
청량사에서 도로를 따라 선학정으로 하산한다.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계곡물이 너무 시원해 손만 씻으려다 발을 담그고 이내 머리까지 감는다. 뜨겁게 달구어진 몸이 한순간 차가워지며 머릿속까지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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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량산 개념도
산행길잡이구분 노선별 거리 소요시간 노선도 1코스 12.7km 9시간 - 안내소 - 축융봉 - 오마도터널 - 경일봉 - 자소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금강대 - 안내소
2코스 6.4km 5시간 - 입석 - 응진전 - 김생굴 - 자소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금강대 - 안내소
3코스 5.1km 3시간 - 입석 - 청량사 - 뒷실고개 - 하늘다리 - 장인봉 - 청량폭포
4코스 5.1km 2시간 30분 - 산성입구 - 밀성대 - 축융봉 - 학소대 - 안내소
5코스 2.3km 1시간 - 입석 - 청량사 - 선학정
>>산행코스
청량산 산행은 짧고 굵다. 산이 높거나 크지 않지만 오름길은 화끈한 맛이 있다. 바위가 많은 산이지만 등산로상 위험한 코스는 없다. 일반적인 산행 경로는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 응진전과 어풍대~김생굴~자소봉~하늘다리~청량사로 도는 코스다. 주봉이 의상봉이지만 딱히 볼 게 없는 헬기장이라 생략해도 무방하다.
청량산을 제대로 보려면 축융봉 산행을 하는 게 제격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청량산 육육봉이 한눈에 드는 것이 청량산에서 본 여느 풍경보다 더 낫다. 축융봉은 성곽으로 오르는 것이 최단 코스이며 위험한 코스는 없다. 하산은 공민왕당으로 해도 되지만 딱히 볼 게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이라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서는 게 더 낫다.
>>교통(지역번호 054)
봉화의 청량산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안동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더 가깝고 편리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안동행 버스가 6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1만5,600원에 2시간50분 정도 걸린다. 안동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1일 5회(05:50 08:50 11:50 14:50 17:50) 운행하며 50분 소요에 요금은 2,000원. 안동시외버스터미널 입구 오른편의 버스정류소에서 67번 좌석을 타면 된다. 청량산이 종점이다. 이 버스가 다시 안동으로 되돌아 나오며 06:50, 10:20, 13:20, 16:20, 18:40분에 출발한다.
동서울에서 봉화행 버스는 1일 6회(07:40, 09:40, 11:50, 13:50, 16:10, 18:10) 운행하며 1만5,100원에 2시간40분 정도 걸린다. 봉화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1일 4회(06:20, 09:20, 13:30, 17:40) 운행하며 되돌아 나간다.
>>숙박
청량산관리사무소 근처에 식당 겸 민박이 여럿 있다. 청량산쉼터민박(054-673-2694), 강변민박(673-6745), 청량산맛고을식당(673-8854), 다래식당민박(673-9005), 대진마트(673-4179), 까치소리식당(673-9777), 그루터기식당(673-5450) 등이며 청량산폭포 앞에도 청량산폭포슈퍼민박(672-1488)이 있다. 청량정사 옆에 있는 산꾼의집(672-8516)에선 이대실씨가 무료로 차와 컵라면을 준다.
/ 글 신준범 기자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