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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

무철 양재완 2010. 2. 28. 12:08

의학의 발전과 식생활 개선에 힘입어 1960년 53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75년 64세, 1985년 68세, 2004년에 76세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 2010년 79세, 2020년 81세, 2030년 82세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삶에 대한 종전의 생각에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를 졸업한 후 취직을 하면 정년퇴직 때까지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의 한국인이 사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이런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기업들이 상시(常時) 구조조정과 조기퇴직 제도를 실시하면서 50세 전후의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경우 50세에 퇴직을 하면 앞으로 30년이라는 세월이 더 남는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여생(餘生)’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길다. 이는 여생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인생을 두 번 산다’고 하여 어떤 학자들은 이를 ‘이모작 인생’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제1의 인생을 사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제2의 인생은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한편에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인생의 후반을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경제적 안정과 정신적 풍요로움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줄서고 싶은가.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면 자연스럽게 ‘은퇴(retirement)’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은퇴란 생산활동을 중지하고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삶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은퇴는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퇴직’과 다르다. 50세 전후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은 퇴직과 은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에서 은퇴한다는 것은 본인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 일반화되면 직업관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직업을 1개가 아니라 2~4개씩 얼마든지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래에는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이 오히려 능력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첫 번째 직장생활이 순조롭지 않았다고 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은퇴할 준비가 안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은퇴 시기를 늦추어야 한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은퇴를 해버리면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짐은 물론, 본인도 아무 할 일 없이 보내는 노후생활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제2의 인생의 궤적은 본인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것이며, 본인의 결정에 따라 매우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 본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기부정 행위일 뿐이다. 은퇴 시기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선택해야 할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은퇴 시기를 결정하기 전에 사전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제2의 인생을 맞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은 넉넉한 노후생활 자금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만60세인 부부가 평균 기대수명(남 77.5세, 여 82.2세)까지 살 경우 필수 생계비와 최소한의 용돈만 쓴다 해도 약 2억6000만원이 필요하며 월 100만~200만원의 여윳돈을 갖고 살려면 약 5억~7억원의 노후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돈이 넉넉하게 있어야 친구들을 불러내 점심을 살 수 있고,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거나 보고 싶은 음악회도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아직 은퇴시점이 상당히 남아있는 사람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하여 목표한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챙겨야 할 것이 건강이다. 돈이 많다고 하여 노후생활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20년쯤 직장생활을 하다가 문득 거울 앞에 서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툭 불거진 배, 가늘어진 다리, 듬성듬성한 머리숱. “이 몸으로 한국인 평균수명이라는 남자 73세, 여자 80세까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만 간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그냥 오래 사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장수국으로 꼽히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장수 인구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2000만명을 넘어선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5%인 100만여명이 치매와 여러 노인병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 같은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방식을 바꾸어라

셋째는 제2의 인생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은퇴자는 직장에서 퇴직한 후 마음껏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가장 행복한 은퇴자들은 일을 계속하거나 자원봉사를 통해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노후생활이란 그동안 바쁘게만 살아왔던 인생을 조금 더 느리게 살고, 물질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돈을 조금 덜 버는 대신 조금 덜 쓰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기만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은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전에 남을 위해 사는 삶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후를 사회에 봉사하는 NGO(비정부단체) 활동으로 보내는 것도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 NGO 활동에는 환경보호 운동, 불우이웃돕기 운동, 장애자돕기 운동, 기부문화확산 운동, 중고품재활용 운동, 프라이버시지키기 운동, 후진국돕기 운동, 의료봉사 활동, 쓰레기줄이기 운동 등 여러 테마가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의 스타일에 잘 맞는 테마를 골라 봉사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넷째는 꾸준한 자기계발 노력이다.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선 젊었을 때에 노후를 대비한 재교육에 투자를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일을 계속 갖는 사람이 많다.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가져다주는 의미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후의 일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자기계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노후 설계에 속한다.

사람이 늙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고독에 대한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노후생활에 대한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돈과 건강,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노력이 더해질 때 노후생활은 풍성하고 보람찬 시간으로 메워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리 준비를 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은퇴생활의 열매를 딸 수 있다.

[펌글 송양민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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