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특별 전시 - 대구 경북의 국보와 보물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대구·경북의 국보와 보물
2,000년 전의 대구 비산동과 1,500년 전의 고령 지산동 -
국립대구박물관은 7월 9일부터 특별전시실에서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국보와 보물을 선보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너른 마음
귀한 유산을 기증하시어
잊혀질 뻔한 역사의 조각들
생명을 얻어 눈 앞에 서네
박물관의 고요함 속
세상의 바쁜 소리 잠시 잊고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
옛날의 그때로 돌아가는 순간
국보의 위엄, 옛 선조들의 숨결
우리에게 전해진 귀중한 이야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그 깊은 역사에 마음을 맡기네
칼과 칼집 - 국보 (대구 비산동. 원삼국시대)
칼은 세향통검으로도 불리며 날이 좁고 직선 형태를 띠며 자루를 따로 만들어 결합한다. 검은 후기로 갈수록 마디가 뚜렷해진다. 검은 무기로서의 역활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특별한 개인이 지니 정치, 사회적 힘을 과시하는 데에도 쓰인다. 칼집은 대부분 나무 같은 유기물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쉽게 썩어 사라진다. 반면 칼집의 양 끝 부분과 중간의 결합부품은 청동과 같은 금속이라 잘 남아있다.
창(1)과 꺽창(2) - 국보 (대구 비산동. 원삼국시대)
창(1) - 적을 찌르는 무기로 창의 아래에 나무 자루를 끼우고 식물의 줄기 등으로 묶어 고정한다. 나무자루 입구의 측면에 반월형 고리가 내부가 막한 채 흔적만 남아있다. 고리는 원래 자루를 고정하거나 수실 등을 매달아 장시하기 위한 것이다
꺽창(2) - 적을 걸어 당기거나 찍어서 끌어 내리는데 쓰는 무기다. 꺽창과 자루는 수직으로 장착하며 자루를 고정하기 위해 하단에 두 개의 구명을 뚫었다. 이 꺽창은 무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몸체가 지나치게 넓고 날이 날카롭지 않은 점으로 보아, 개인의 위세를 드러내거나 모종의 의례를 위해 사용한 도구로도 보인다
양산살 끝 꾸미개 (1). 쇠뿔모양 銅器 (2). 청동기 (3) - 국보 (대구 비산동. 원삼국시대)
목걸이 - 보물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남색의 유리구슬 500개를 엮어서 만든 목걸이다. 구슬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유리구슬 속에 기포가 보인다. 남색 유리구슬 목걸이는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한 장신구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75호 무덤을 비롯해 김해 대성동, 양동리 유적, 함안 도항리 유적 등지에서도 출토되었다. 고대에 복식품으로 사용한 유리구슬은 현대의 것과 비교해도 사용 원료나 제작 기술이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숫돌 - 보물 (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숫돌 위에 맞새김한 은제 장식을 씌웠다. 이는 원래 허리띠에 매달아 늘어뜨리는 장식이다. 삼국시대 숫덜은 철기 제작할 때 필요한 물건으로 철기를 다루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허리띠레 숫돌을 매단 사례는 경주 천마총, 경산 임당, 창녕 교동 등지의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숫돌이 무거워서 탈락하고 으제 장식만 남아있다.
큰칼 - 보물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삼국시대의 칼은 전쟁에서 사용되는 실용무기이며 여러 가지 장식을 더해 소유자의 위세를 드러내기도 한다. 금과 은으로 장식하며 특히 칼 손잡이의 끝을 짐승 얼굴, 새고리, 세잎으로 장식한다.
말띠드리개 (행엽杏葉) - 보물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1 - 은장 하트모양 말띠드리개 - 하트모양의 기본 형태를 이루는 철판 위에 은판을 덧씌운 문양판을 올리고은제못으로 고정했다. 중앙부의 문양은 세잎무늬이다. 상부에는 네모난 연결고리가 있는데 이는 가죽끈이 통과하던 곳이다
2 - 금동 나뭇잎모양 말띠드리개 - 말띠드리개 아래부분에 뾰족하게 돌출된 부분을 '자刺'라고 하며 보통 5개의 자를 가진 나뭇잎 모양 말띠드리개를 자엽형 행협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스타일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6세기에 유행하며 신라에서 많이 확인된다.
3 - 금동 하트모양 말띠드리개 - 철판 위에 금동판을 덮고 그 위에 하트와 식물모양을 조합한 문양판을 얹어 꽃 모양 못으로 박아 판을 결합했다. 특히 가장 테두리에도 잎이 네 개인 꽃무늬로 정교하게 장식했다. 상부의 네모난 구명에는 금동띠를 구부려 끼우고 2개의 못으로 가죽끄으로 연결한다, 뒷면에는 천 조각이 수착된 상태로 남아 있다.
발걸이와 종방울 - 보물 (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발걸이는 말을 타는 사람이 말에 오를 때와 달릴 때 양발을 끼워 안정을 유지하는 도구다. 발걸이는 윤부와 병부로 구성된다. 윤부는 타원형으로 발을 딛는 부분이다. 병부는 윤부 위에 영결되어 끈으로 안장에 발걸이를 단다. 발걸이를 달기 위해 방부 맨 위에 구명을 내는데 이 발걸이는 구명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종방울은 원래 비어잇는 몸통을 만들고 꼭대기에 막대 모양의 혀를 달아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만든 도구다. 맨 위에 달린 둥근 고리를 이용해 끈에 연경했다. 한 무덤에서 마구와 함께 출토될 때 말의 목에 달던 마탁으로 보기도 한다
말띠꾸미개 - 보물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가죽끈이 교차하는 지점에 부착해 끈을 고정하는 실용성과 더불어 장식 효과를 더하는 마구다. 현재 끈이 통과하는 부분이 4개인 것과 최대 8개였던 것으로 구성된다. 철제 바닥판 아래에 가죽의 흔적이 남아있다. 상부에 잎이 8개인 꽃 모양 장식을 덧대고 그 위에 다시 꽃 모양 금동 못을 박아 장식을 한창 부각시켰다.
말띠꾸미개와 말띠드리개 - 보물 (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말띠꾸미개는 말의 굴레, 가슴걸이, 후걸이 등의 가죽끈들이 교차하는 곳에 박아 이들을 서로 고정하는 마구다. 말띠드리개와 같은 장식을 늘어뜨린 가죽끈을 묶기도 하고 교차하지 않는 가죽끈에도 묶어 말을 장식한다. 말띠드리개는 말의 가슴걸이나 후걸이와 같은 가죽끈에 매달려 말을 장식하는 도구다 말띠꾸미개와 말띠드리개가 금동띠로 연결된 사례로 보아 이 형태의 말띠꾸미개와 말띠드리개는 세트 관계를 이루며 말을 장식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