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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여행) - 적천사와 적천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402호)

무철 양재완 2018. 10. 28. 20:03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4년(664년)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토굴로 창건하였으며

신라 흥덕왕3년(828년)에 흥덕왕(興德王)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다.

고려 명종5년(1175년)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오백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으로 중건하여

동북쪽에 영산전(靈山殿)을 세우고 자련암, 옥련암, 은적암, 목탁암, 운주암 등의 암자를 세웠으나

임란 때 병화로 소실되고 헌종5년(1664년)에 사원은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숙종 20년(1694년)에 태허선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천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적천사 은행나무 (천언기념물 제 402호)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거목이 되었다고 전해져온다.

이 은행나무는 3m까지 외줄기이며 그 위에서 3개의 가지가 나 있다. 지표부위 원줄기에 접해

맹아가 서편으로 1개 남 동편으로 1개 북편으로 1개 등 모두3개가 수직으로 나있다.
수령은 약 800∼1000년으로 추정되고 높이 28m 둘레 11m의 암나무로 열매가 달리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28.8m, 남북으로 31.3m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물게 노거수로서 수형이 아름답고 맹아(萌芽) 및 유주(乳柱)의 발달이 특이한 나무이다.





유주 (乳柱)

가지 사이에 혹 또는 방망이처럼 생긴 가지를 말한다






천왕문






무차루






적천사 대웅전 (유형문화재 473호)

이 전각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상부에 배흘림의 원주를 세웠다.

 칸살의 구성은 정면과 측면 모두 3칸이고 정면 어간은 4분합문, 양 협칸은 3분합문으로 구성한 빗살무늬의 들어열개 문이다.
공포는 내 . 외 3출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칸에 3구씩의 포가 배치되어 있다.

가구는 측면을 2고주 현상으로 평방 위에 기둥을 덧대어 올리고 내부는 불벽을 세우기 위한 내 고주(高柱)를

측면의 뒤쪽 고주 열 보다 조금 뒤로 물려 세우고 이 내 고주 위에 대량을 올리고 퇴량을 걸었다.

내 고주 뒤에 가재모양의 우미량 부재를 꽂아 배면기둥 상부 평방에 걸치게 하여 보강을 한 것은 특이한 부분이다.





대웅전



대웅전 삼세불상



명부전과 괘불 석주 ((보물 1432호)









목우당



조사전



산령각과 독성각



원음전



영산전



적묵당





















적천사를 내려가며